[전시 탐구] 색면으로 우주를 여는 탁노, 금보성아트센터서 초대전
현대미술의 언어가 점점 더 많은 설명과 개념으로 포화되는 시대, 작가 탁노는 침묵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초대전 《색면은 어떻게 우주가 되는가–탁노 색면 회화가 던지는 생성의 미학–》은 색과 화면, 그리고 존재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실험적 전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은 설명되는가, 생성되는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탁노의 화면에서 색은 단순한 배치나 표현이 아니라, 물질과 조건이 만나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물감은 중력과 시간, 습도와 온도, 점성과 건조 속도 같은 물리적 조건에 따라 흘러가고 스며들며 멈춘다. 작가는 색을 통제하지 않고, 조건을 마련한 뒤 물질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이로써 화면은 표현의 흔적이 아니라 생성의 기록으로 남는다.

탁노의 작업은 색면추상과 단색화의 전통을 잇되, 그것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이 개척한 색면추상은 회화를 재현에서 해방시키고 색 자체를 존재론적 매개로 끌어올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숭고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탁노는 이 지점에서 색면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되돌린다. 보여주기 위한 색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발생하는 색을 화면에 세운다는 태도다.

그가 기대는 핵심 개념은 동양철학의 ‘무위(無爲)’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개입을 거두고 사물의 자생적 질서를 열어두는 결단이다. 탁노는 이 윤리를 회화의 물질적 차원으로 옮긴다. 형식을 미리 설계하지 않고, 색을 의도대로 정렬하지 않는다. 대신 중력과 시간, 재료의 성질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맞춘다. 이때 작가는 지시자가 아니라 매개자로 후퇴하며, 회화는 인간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의 생성이 표면에 기록된 사건이 된다.

탁노의 화면은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두터운 물감의 퇴적과 흘러내린 자국, 마른 층과 젖은 층의 충돌이 층위를 만들며, 색은 고정된 면이 아니라 감각이 출렁이는 ‘장(場)’으로 변한다. 색과 색 사이의 여백은 공백이 아니라 기운이 순환하는 공간으로 읽힌다. 시간의 지층처럼 쌓인 물감층은 작품을 단일 순간의 산물이 아니라 시간을 포함한 존재로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는 단색화 이후 한국 추상이 맞닥뜨린 오래된 과제도 다시 꺼낸다. 서구 형식의 변주와 개념적 해석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한국 추상에 대해, 탁노는 ‘한국적인 색’을 주장하는 대신 ‘한국적인 사유 방식’을 회화의 작동 원리로 제안한다. 전통 문양이나 형식을 차용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는 세계관을 생성 과정에 심는 방식이다. 이는 국제 담론 속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한국 색면 회화의 한 모델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탁노의 색면은 관객에게 해석보다 호흡을 요구한다. 화면은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며, 스스로의 리듬으로 생성된다. 그의 작품 앞에서 질문은 단순해진다. 예술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 이번 전시는 그 질문을 ‘말’이 아니라 ‘색’으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