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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51】 박진형의 "당신이라는 QR코드"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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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QR코드

 

박진형

 

당신을 만들어 놓고 접속을 기다린다

카메라를 비추면 깨어날 기억 회로

그 안에 탄생과 소멸

미로처럼 숨는다

 

젊은 날 남긴 주소가 격자 속에 갇혀버려

지문 대신 남은 건 응답 없는 네모 세상

분실된 초대장인지 페이지가 끊긴다

 

열리지 않은 링크가 혼잣말을 삼킬 때

오류코드 인생이 불완전하게 재생된다

오래된 미수신 알림

머릿속에 잠긴다


- 웹진 《문예마루》제3(2026.1)

당신이라는 QR코드 _ 박진형 시인 [ 이미지 :강영임 시인]

곁에 있는 것옆에 있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다.‘은 내 옆처럼 아주 분명하고 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 된다.

 

QR코드는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숫자와 문자를 담고 우리 곁에 존재한다.마트에서도 가게에서도 모든 상품에도 있다.늘 존재하지만 스스로 열리지 않아 누군가의 카메라,누군가의 시선,누군가의 선택이 있어야만 한다.

 

젊은 날 남긴 주소가 격자 속에 갇혀버려한때는 누군가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도달할 수 없게 된다.기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이동할 수 없다.길은 지워졌고 남은 것은 네모난 배열뿐이다.지문 대신 네모만 남아 체온을 잃어버린 고백처럼 들린다.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다.실패는 적어도 시도했다는 흔적을 남긴다.그러나 이 시에서는 시도조차 불확실하다.

 

분실된 초대장인지 페이지가 끊긴다라는 문장은 화자가 자신에게조차 묻고 있음을 보여준다.나는 초대받지 못한 것일까,아니면 초대를 받았지만 잃어버린 것일까.이 질문은 끝내 답을 갖지 않는다.그래서 상실은 명확한 사건이 아니라 확인할 수 없는 공백으로 남는다.

 

열리지 않은 링크가 혼잣말을 삼킬 때말은 상대에게 도달해야 의미가 있다.그러나 도달하지 못한 말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이때 말은 소통이 아니라 잔향으로만 남게 된다.아무도 듣지 않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머릿속에 쌓인다.그래서 오래된 미수신 알림/머릿속에 잠긴다오래된 알림은 삭제되지 않는다.그것은 알림이 아니라 기억이고 머무름이다.이 시의 주체는 지우지 못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결국 오류코드 인생이 불안전하게 재생된다인생은 뒤돌아서 보면 늘 만족스럽지 않다.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스러움이 불안정하게 재생된다.찍히지 않는 QR코드는 아무것도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자체로 이미 많은 것을 품고 있다.이 시의 당신역시 열리지 않았기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열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많은 것을 품어 남게 된다.

 

「당신이라는 QR코드」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당신을 사람으로 두지 않고 QR코드로 둬 서로 다른 것을 이어주는 것으로 설정했다.이는 대상의 비인격화가 아니라,오히려 현대적 친밀성을 가져온다.뿐만 아니라 당신을 만들어 놓고’ ‘접속을 기다린다’ ‘카메라를 비추면’ ‘페이지가 끊긴다’ ‘미수신 알림이 머릿속에 잠긴다처럼 접속-단절-잔존으로 전개되면서 구조의 미학을 가져온다.

 

기다림은 손을 뻗는 일이 아니라,열리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일이다.내 곁을 내어준 사람, 내 곁을 내어주기를 묵묵히 기다려 주는 사람 문득, 그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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