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시인선 0175 김연순 시집 『도화꽃 피는 마을』

김연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도화꽃 피는 마을』이 천년의시인선 175번으로 출간되었다. 김연순 시인은 2018년 『문학청춘』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김연순의 시집 『도화꽃 피는 마을』은 감각의 저항으로서의 시가 어떻게 세계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집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서 노동, 모성, 기억을 물질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생활 공간과 꽃 이미지를 통해 서민적 일상을 시적 질감으로 승화시킨다. 특히 모성은 신화적 이상이 아닌 생활 속 체온과 몸의 기억에 스며든 윤리로, 노동은 여성의 몸에 새겨진 시간과 기억으로 표현된다.
또한 이 시집은 도시를 거대 서사 대신 구체적 생활 공간으로 묘사하며, 시장과 골목 같은 장소를 감각과 기억이 축적된 존엄의 무대로 그려낸다. 청각은 존재를 인식하고 타자와 관계 맺는 윤리적 태도로 기능하며, 고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감정의 결을 포착한다. 김연순 시인의 언어는 군더더기 없는 절제 속에 경험의 촉감과 온도를 담아내며, 이러한 농축된 언어는 강한 울림을 만든다. 기억 또한 단순 회상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의 감각적 결을 존중하는 윤리적 공간으로 마련된다.
결국 『도화꽃 피는 마을』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생활의 구체성과 감각을 통해 사랑과 돌봄을 ‘듣기’와 ‘돌보기’의 태도로 재정의하는 시집이다. 이는 한국 현대시에서 ‘생활서정’의 새로운 지점을 제시하며, 시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감각과 윤리의 언어화로 나아갈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추천사❚
김연순의 시편들은 투명하다. 투명하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사색의 결들이 겹쳐져 촘촘하고도 유머러스한 시적 언술로 나타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시들은 화려한 수사를 보여주지 않으며, 복잡한 알레고리로 엮여 있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숨겨져 있는 빛의 무늬를 재치 있게 포착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하루가, 스쳐 지났던 자연이, 내 곁의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따뜻했는지,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었는지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오히려 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적 통찰로 발굴해낸 김연순의 시편들은, 오랜 문학수련을 통해 절차탁마한 언어들의 결정이기에 그 반짝거림은 남다르다. 때로는 때 묻지 않은 처녀처럼 수줍어하는 색깔이었다가, 때로는 당돌하게 덤비는 청소년처럼 낯선 체험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크게 눈길을 끄는 것도 아닌데 빛나는 시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기에, 언어의 상흔이 깊은 울림으로 확정되지 않은 채 세상의 가장자리에 아직 머물러있는 그의 시들은, 삶을 대하는 정직한 마음과 깊은 눈으로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를 차분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권영준 시인
김연순의 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삶의 결을 따라 흐르는 감각의 언어이다.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을 비추며 삶의 순간들에 머물던 감정들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시인은 구체적인 생활의 결을 통해 인간의 온기와 균열을 동시에 드러내고, 삶의 있는 그대로의 무게를 견디며 그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내고 있다. 삶의 순간들이 미세한 감각으로 살아나고 기억은 현재 속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남는다. 섬세하게 환기되는 감각의 층위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지금, 여기에 펼쳐지고 있다.
이 시집은 삶의 경험을 감각과 인식이 교차하며 의미를 생성하는 장으로 사유한다. 또한 이 시집의 언어는 절제된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여백과 간극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 시집은 절제된 언어로 삶의 풍경을 그려냄으로써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권경아 평론가(관동대 교수)

❚저자 약력❚
김연순
경기도 여주 출생.
2018년 『문학청춘』 시 부문 신인상 등단.
유튜브 《한자끝장 김쌤》, 《서위》 크리에이터.
《문학TV-Silk Road》 편집장.
이메일: [email protected]
❚시인의 말❚
도화꽃 피는 봄이다.
꽃을 보면 웅크린 마음이 풀어지듯
시는 나에게 진통제와 같다.
오늘을 건너가며 우리는 늘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바로 서기 위해
나는 시를 부른다.
호명한 문장을 다듬는 동안
엉킨 매듭이 조금씩 풀리고
아픔의 모서리는 둥글어지며
잠시 숨을 고를 여백이 생긴다.
어둠 속에서 서성이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불빛
창문 밖 긴 밤을 건너게 해주는
진통제다.
도화꽃이 바람에 날리듯
그 시간도 가볍게 지나가리라.
2026년 5월, 원미산 아래에서
❚시집 속의 시 한 편❚
도화꽃 피는 마을
도화꽃 이파리 뒷장이 붉어졌어요
아침마다 바람이 지나가는 언덕길 낡은 집이 보여요
나는 도화꽃 뒷장에 숨어 바람의 거친 발자국 소리를 들어요
바람은 사막의 모래처럼 뜨거운 입김으로 나를 흔들어요
한발로도 서 있을 수가 없어요
영문도 모르는 밤나무들,
훅훅 아랫도리가 뜨거워져요
꽃의 입술과 3월의 발뒤꿈치는
바람의 내력을 닮았어요
입술과 바람이 붉게 꽃잎으로 포개지며 밤이 익어 가요
꿈속인 듯 낡은 집들이
기운 어깨를 들썩이며 햇살을 품어요
바람의 목덜미에 도화꽃이 떨어지는 정오
한 마리 붉은 뱀이 햇살로 물이 들어요
❚펴낸곳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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