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시선 2] 임진강에서

임진강에서
전비담(시인)
통일전망대 가는 길이 어디니
스마트네비게이션에게 물었다
오두산전망대는 겨울비가 내려서
오리무중이라 했다
장대비 내리꽂혀 피워올리는
임진강 매캐한 안개의 장막
손 뻗치면 닿을 듯 펄럭이던 인공기도
트랙터 모는 초로의 주민도 저 멀리 송악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워 초췌한 북한의 아무것도
애타서 수척한 남한에서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서도 보이지 않았다
우웅웅웅ㄲㅡㄲㄲㄲ
남북 서로 맞댄 초대형스피커에서
귀신씨나락까먹는 소린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괴음들이
안개에 뒤엉켜서 더뎅이지고 있었다
오두산전망대에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취임일성으로 선제공격을 선언한 권력자가
통일원 이벤트에 써서 갈긴 자유평화통일
영혼 없는 휘호만 전시되어 있었다
아직도 전시인 이 나라
전시된 평화와 전시된 통일
쇼비니즘의 전망이 전시되고 있었다
권력자의 탐욕만큼 기괴하게 뭉글거리는
우무(雨霧)의 저 어디쯤에서
남북 서로의 심장을 쇠못으로 긁으며
칠십 묵은 귀신울음이 운다
북한을 남의 나라라고 말하는
남한의 젊은 아이 손목을 잡고서
전망의 절망으로 오도카니 서 있었다
찬비 맞은 젊은 기러기 늙은 기러기들이
오돌오돌 울며떨며 방향을 잃었다
자유평화통일이 어디로 가는지
안 보이는 안보의
기러기 대열 속으로
11월의 비는 내리고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오리무중
통일도 오리무중
통일이 허리 잘린 한반도를 비웃고 있었다
-전비담 시, 「오두망찰 오두산통일전망대」 전문

지난해 늦가을 북한 땅을 가장 가까이서 전망할 수 있다는 오두산전망대에 다녀오면서 적은 시다. 취임 초부터 선제공격 운운하며 한반도 긴장을 조장하던 자가 친위쿠테타를 위한 빌미로 외환까지 공작하며 북한을 집적거릴 때였다. 먹구름이 두텁게 덮여서 북한땅은커녕 발아래 임진강 조차 한치 분간이 안 되는 기괴한 날씨가 꼭 흉흉한 나라 꼴 같기도 하여 마음에 암울한 비구름의 낙진을 부여안고 쓸쓸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학교 수학선생이라 학기 중에는 좀체 시간을 내기 어렵다가 방학을 맞아 맘먹고 임진강 근처의 내 공부방을 찾은 동생을 데리고 다시 오두산전망대를 찾았다. 날이 맑아 북녘 땅이 새뜻하게 눈에 들었다. 간조의 시간, 서해의 썰물을 따라 강물이 쑥 달아나고 환하게 드러난 임진강 바닥. 2킬로미터만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데... 걸어서 불과 2,30분 거리의 우리 땅을 고작 모니터로 '관람'하고 망원렌즈로 '전망'하며 그리운 정감을 삭여야 하는 분단의 모순이, 올 때마다 사무쳐서 못내 아쉽고 서글프고 속상했다.
엄중하게 흘러온 지난 몇 개월 새 가열한 민주의 빛이 누란의 나라를 구하고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그동안 특권을 유지하려고 분단의 민족 비극을 요리조리 이용만 해 먹던 기득 권력충들과는 완전히 다른 시절을 이루겠지, 희망을 걸어본다. 자주 먹구름 끼던 한반도 평화의 기상예보가 하루속히 저 활짝 갠 임진강처럼 화창해지길.
어느 세력의 무리가 그 인식의 틀을 조장해왔는지는 따져볼 생각도 안 하고, 통일을 입에 올리면 무슨 낡고 허황한 꿈이나 꾸는 돈키호테 취급하는 시대이다. 이 무도한 시대가 부끄럽고 참담하여 나는 자주 임진강변을 찾아 나서곤 한다. 학창시절 음악 교과서로 배워서 주문을 외듯 부르고 다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의 염원을 가만가만하고도 힘차게 임진강 저 유장한 물결 옆에 서서 불러보곤 한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분단 80주년이기도 하다.❖
전비담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