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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해설] 최유진의 "나의 옛이야기"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 해설] 최유진의 "나의 옛이야기"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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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4]

나의 옛이야기

 

최유진

 

친구와는 조금 다른 나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컸지

 

어느 날 보니 손쓰는 것도 달랐지 뭐야

어이쿠, 이걸 어쩌나?

 

고민고민하다가

작가라는 꿈을 꿔봤지

 

매일 연필로 글쓰는 연습을 했지

이것 참 재미나지 뭐야

 

연필 다음 볼펜, 볼펜 다음

노트북에서 손가락은

 

피겨를 하듯

자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세 손가락으로 말야

너무 재미있는 일이야

 


세상은 모두가 희망

 

최유진

 

세상 모든 게 희망이야

힘이 들고

슬플 때도 있지만

 

내가 가진 장애가

슬픔이 아닌

행복이 되고 웃음이 될 수 있게 하고 싶어

 

모두와 희망을 말하며 살고 싶어

가끔은 내 모습이 싫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웃음으로 이기고

긍정으로 이기며

모두와 더불어 살고 싶어

 

ㅡ《솟대평론》(2023년 상반기호)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말자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말자

 

  뇌경변장애가 있는 여성 장애인 최유진 씨는 경희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시와 동시를 열심히 쓰고 있다. 많은 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2019년에 장애와문학학회를 만든 이후 다섯 차례 학술대회를 갖는 동안 만나게 된 장애인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 표정 관리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얼굴이 아주 밝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거나 화난 표정, 불만이 깃든 표정,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내 얼굴에도 분명히 깃들어 있을 탐욕이나 우월감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어서 이분들 앞에 서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한 장애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살아왔는지 얘기해주는 동시가 「나의 옛이야기」다. 뇌경변장애가 있는 최유진 씨이니 자신의 사례는 아닐 것이다. 어느 한 아이가 피겨를 하듯 세 손가락으로 자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자기가 뭘 잘할 수 있을지 찾아보니까 글쓰기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글을 쓰게 되었으니 자전적인 내용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최유진 씨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평생 글을 쓸 분이다.

 

  그다음에 소개한 동시는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피력한 작품으로, 너무 밝아서 놀랍기만 하다. 장애인이라서 힘이 들고 슬플 때도 있다고, 내 모습이 싫고 답답할 때도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웃음으로 이기고 긍정으로 이기며 모두와 더불어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말한다. 이 2편의 동시를 읽어보니 육체와 정신에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장애인(障碍人)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에 장애가 없는 사람 중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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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시#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