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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두 초대전으로 선보이는 13번째 개인전, 삶과 죽음·선과 악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서사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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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깨어나는 시간, 하소영의 ‘포이에틱’

봄이 오면 사람들은 흔히 꽃을 기대한다. 환하게 열리는 색채, 부드럽게 흔들리는 잎사귀, 생명의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하소영 작가의 봄은 조금 다르다. 그의 화면 속 식물은 단지 계절의 기쁨을 전달하는 장식적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생명에 대한 경의이자, 인간 존재의 내면을 비추는 은유이며, 삶과 죽음, 선과 악이 뒤엉킨 세계를 응시하게 하는 사유의 장이다. 이번 갤러리두 초대전으로 열리는 13번째 개인전은 그렇게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 너머로 관객을 이끈다.

하소영 작가

하소영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다져왔다. 2026년 갤러리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열세 번째 개인전으로, 오랜 시간 축적된 조형 언어와 최근의 사유가 함께 응축된 자리다. 그는 개인전뿐 아니라 부산국제아트페어(BAMA), 조형아트서울, LA 아트쇼 등 다양한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화면을 확장해 왔다. 

전시초대장

이번 전시의 제목은 〈포이에틱: 아브락사스를 꿈꾸며〉. 제목만으로도 시적이고 철학적인 울림을 품고 있다. 전시서문에 따르면 하소영은 이번 개인전에서 ‘아브락사스를 꿈꾸며’ 연작을 선보이며, 생명력 넘치는 소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의 형상, 굴껍질처럼 엉겨붙은 물감 덩어리들을 통해 낯설고도 원초적인 생명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의 화면 속 알은 메추리알 같기도 하고 자갈 같기도 하며, 때로는 조개의 마지막 숨결처럼 보이는 하늘색 기운을 머금는다. 이 비현실적 스케일과 이질적 물성은 화면을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닌, 존재와 생성의 은유로 바꾸어 놓는다.

심연(深淵)130.3x130.3 oil on canvas 2025

그 출발점에는 뜻밖에도 독서가 있다. 작가는 예술 관련 독서 모임을 3년째 이어오던 중, 어린 시절 읽다 멈췄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최근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알에서 깨어나는 새’ 아브락사스를 다시 만났다. 작가는 이 존재를 단지 문학 속 상징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었고, 인간 내면의 양면성과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자아의 형상이었다. 그는 선과 악의 공존이 결국 내 안에도 존재한다고 느꼈고, 죽은 나무와 알의 이미지를 통해 지난 시간에 대한 경의와 미래에 대한 예감을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아프락사스를 꿈꾸며 45.5x45.5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5(1)

이 지점에서 하소영의 회화는 자연을 그린 그림에서 멈추지 않는다. 작가노트에서도 그는 식물 등 자연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애썼다고 밝힌다. 기존 작업이 사라지고 오래된 생명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해 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여기에 더해 『데미안』의 아브락사스를 소환함으로써 인간 본성의 이중성, 즉 삶과 죽음, 선과 악이라는 대립적 요소를 가장 인간적이고도 솔직하게 인정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봄 전시’이면서도, 결코 가볍거나 장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생명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불안이 동시에 깃든, 깊은 사유의 회화라 할 수 있다.

아프락사스를 꿈꾸며 60.6x45.5 oil on canvas 2025

하소영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색채다. 그중에서도 레드는 중요한 감정의 언어로 작동한다. 작가는 레드를 “완전히 개인적인 느낌과 감각으로 선택한 컬러”라고 설명하며, 다소 소극적이고 표현이 부족한 자신에게 내면의 에너지를 표출하게 하는 색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레드는 죽음이나 피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의 붉은 색면은 단순한 시각적 강조가 아니라, 침묵하던 내면이 밖으로 뻗어 나오는 순간의 기록이자 생의 힘에 대한 선언처럼 읽힌다.

아브랏사스를 꿈꾸며 45.5x45.5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6

전시서문은 하소영의 화면을 두고 “아직은 완전히 탄생하지 않은 아브락사스”의 상태라고 묘사한다. 알들은 태아처럼 고요히 부유하고, 소철은 그것들을 감당하기 벅찬 듯 꺾이고 휘어진다. 그 모습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으나 분명 무언가를 품고 있는 존재, 균열과 이물감 속에서도 생명의 기미를 놓지 않는 존재 말이다. 하소영의 회화는 바로 그 불완전하고도 진실한 상태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화양연화113x123 oil on canvas 2024

1993년 석사학위 청구전을 시작으로 30여 년 넘게 화업을 이어온 하소영은 화려한 언어보다 묵직한 화면으로 자신의 세계를 증명해 왔다. 이번 13번째 개인전은 그 축적의 시간 위에서 또 한 번의 변주를 보여준다. 기존 작업과 신작이 함께 전시되는 이번 무대는, 한 작가가 자연과 인간, 시간과 존재를 어떻게 오랜 세월 화폭 위에서 질문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하소영의 그림 앞에 서면 봄은 더 이상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깨어남의 시간이고, 오래된 생명에 대한 애도이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일을 품은 알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화면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 안의 아브락사스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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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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