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꽃 중의 왕 모란과 꽃 중의 재상 작약!
봄이 깊어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정원 한편에서 가장 화려하게 시선을 붙드는 꽃이 있다. 바로 모란과 작약이다.
두 꽃은 모두 크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피우며, 겹겹이 포개진 꽃잎 속에 부귀와 사랑, 기다림의 정서를 품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이 꽃들을 단순한 관상용 식물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품격, 인연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모란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줄기가 목질화되어 겨울에도 가지가 남아 있으며, 이른 봄부터 새순을 틔워 4월에서 5월 무렵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꽃 중의 왕’이라 불릴 만큼 당당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 회화, 병풍, 도자기, 자수 문양에 모란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란은 부귀, 영화, 번영, 품격의 상징으로 사랑받아 왔다.

작약은 풀에서 피는 꽃이다.
겨울이 되면 지상부가 사라지고 뿌리로 월동했다가 봄이 오면 다시 싹을 올린다. 모란보다 조금 늦은 5월에서 6월 무렵 꽃을 피우며, 부드럽고 우아한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작약은 ‘꽃 중의 재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모란이 왕의 풍모라면 작약은 곁에서 품격과 향기를 더하는 귀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두 꽃은 닮은 점이 많다.
모두 크고 풍성한 꽃잎을 지녔고, 붉은색·분홍색·흰색 등 다양한 색으로 피어난다. 한 송이만으로도 정원을 환하게 밝히며, 예부터 부귀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꽃이 피는 시기가 봄과 초여름 사이에 걸쳐 있어 계절의 절정을 알리는 꽃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차이도 분명하다.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이다. 모란은 줄기가 남아 해마다 그 자리에서 가지를 키우지만, 작약은 겨울이면 땅 위의 줄기가 사라졌다가 이듬해 다시 올라온다. 꽃 피는 시기도 모란이 조금 빠르고, 작약이 뒤이어 핀다. 잎 모양에서도 차이가 있다. 모란의 잎은 비교적 넓고 갈라진 느낌이 강하며, 작약의 잎은 매끈하고 윤기가 돌며 길게 뻗은 형태가 많다.
꽃말도 서로 닮았으면서 다르다.
모란의 대표적인 꽃말은 부귀, 영화, 품격, 행복한 삶이다. 그래서 모란은 혼례, 집안의 번영, 가문의 복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주 쓰였다. 반면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 부끄러움, 정이 깊음, 행복한 결혼이다. 탐스럽게 피지만 봉오리일 때는 단단히 닫혀 있다가 어느 순간 활짝 열리는 모습 때문에 수줍은 사랑의 이미지가 붙었다.

모란에는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나라에서 모란 그림과 씨앗을 보내왔는데, 그림 속 모란에는 벌과 나비가 없었다. 어린 선덕여왕은 이를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피어난 모란에는 향기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선덕여왕의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지며, 모란이 지닌 화려함과 고고함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작약에는 사랑과 기다림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서양에서는 작약을 결혼식 꽃으로 많이 사용하며, 행복한 결혼과 풍요로운 사랑을 상징한다. 꽃봉오리가 둥글게 맺혀 있다가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열리는 모습은 마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수줍은 고백처럼 보인다. 그래서 작약은 오래 기다린 사랑, 깊은 정, 조용하지만 뜨거운 마음을 담은 꽃으로 읽힌다.
모란과 작약은 서로 닮았지만, 각자의 아름다움이 다르다.
모란이 당당하게 피어나는 부귀의 꽃이라면, 작약은 속 깊은 정을 품고 피어나는 사랑의 꽃이다. 하나는 왕처럼 화려하고, 하나는 재상처럼 우아하다. 그래서 두 꽃이 함께 피어 있는 정원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생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세상 앞에 당당히 피어나는 순간과,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랑이 조용히 열리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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