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왜 MZ세대는 서점이라는 '오래된 광장'으로 모이는가
초연결 사회의 역설, 느린 관계의 복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는 약 69억 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경우 만 10세 이상 인구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95%를 넘어섰으며, SNS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2시간을 초과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같은 시기에 '외로움'은 전 세계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미국 공중보건국장 비벡 머시는 2023년 외로움을 공중보건 위기로 공식 선언하며, 사회적 단절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건강 위해를 가져온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 역시 2021년 사회적 고립도 조사에서 OECD 최하위권을 기록했으며, 특히 20·30대의 고립감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입니까? 문제는 연결의 '양'이 아니라 '질'에 있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이 설계하는 관계는 본질적으로 속도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틴더(Tinder)·범블(Bumble)과 같은 데이팅 앱은 인간을 0.5초 안에 '스와이프'로 평가받는 이미지 상품으로 환원합니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와 좋아요 카운트는 관계의 깊이가 아닌 관계의 '규모'를 수치화합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비슷한 사람'만을 반복적으로 추천함으로써, 다양성과 우연성이 사라진 폐쇄적 정보 거품 속에 개인을 가둡니다. 인간관계는 점점 더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폐기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교보문고·영풍문고·알라딘 중고서점 등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 단순한 도서 구매 공간을 넘어, MZ세대의 새로운 사회적 소통의 광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 서점이 가격 경쟁력과 편의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젊은 세대는 굳이 몸을 이끌고 물리적 공간으로 향하는 것입니까?
서점이라는 공간의 사회학 '취향'이 언어가 되는 곳입니다. 서점은 매우 독특한 사회적 생태계를 형성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매 공간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한 사유의 물리적 집합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특성이, 현대인들이 다른 어떤 공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회적 기능을 만들어냅니다.
서점은 비언어적 자기표현'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공장소 입니다. 카페나 헬스장, 혹은 클럽과 같은 공간에서는 외모,패션,말솜씨가 첫 인상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서점에서는 어떤 서가 앞에 서 있는가'라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자기 표현이 됩니다. 철학 코너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펼쳐 드는 사람, 과학 코너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집어 드는 사람, 시집 코너에서 김혜순의 시 앞에 멈추어 서는 사람. 이 모든 장면은 어떤 화려한 자기소개보다도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투명하게 드러냅니다. 이것은 프로필 사진이나 스펙 나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나'의 공개입니다.
서점은 심리적 안전지대'를 구조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낯선 타인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평가 우려'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이 불안은 SNS와 데이팅 앱이 강화한 즉각적 판단 문화 때문에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해 있습니다. 서점에서는 이 불안이 구조적으로 완화됩니다. 대화의 매개체인 책'이 일종의 심리적 완충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작가 좋아하는데, 이 책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라는 말은, 상대를 직접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를 매개로 대화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는 거절당했을 때의 상처도 최소화하고, 접근했을 때의 부담도 줄여줍니다.

'서점은 알고리즘이 제거한 '우연성'과 다양성'을 복원하는 공간입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사용자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만을 반복적으로 제안합니다. 이 구조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좁히고 새로운 자극과의 우연한 만남을 차단합니다. 반면 서점의 서가를 따라 걷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의 책이 시선을 사로잡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우연한 발견의 경험은 타인과의 만남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알고리즘이 절대 연결해 주지 않을 다른 배경,취향,생각을 가진 사람과 마주칠 가능성, 그 가능성 자체가 서점이 가진 고유한 사회적 가치입니다. 느린 관계'의 미학 속도를 줄이는 것이 관계를 깊게 합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의 인간관계를 '액체 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고체처럼 단단하게 유지되던 전통적 관계 구조가 액체처럼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게 변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빠르게 형성되고 빠르게 해체되는 관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깊은 애착을 형성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습니다.
서점이 MZ세대에게 제공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이 속도의 조절 입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특성 자체가 느림을 강제합니다. 무거운 책들이 줄지어 선 서가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집니다. 책의 첫 장을 펼쳐보고, 목차를 훑고, 인상적인 문장 앞에서 멈추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늦춥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시작되는 대화는, 서두르지 않는 관계의 씨앗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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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락에서 서점형 만남이 보여주는 새로운 소통의 문법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 접근, 그리고 물러남의 미덕 입니다. 번호 좀 주세요, 라는 일방적 요구 대신 혹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셨나요? 라는 조심스러운 제안이 오갑니다. 상대가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면, 조용히 자신의 서가로 돌아가는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상대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접촉 이야말로, 관계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시대에 타인과 조심스럽게 연결되려는 가장 성숙한 방식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서점에서의 만남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꾸준히 공유되고 있습니다. 경제 코너에서 같은 책을 들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시집을 고르던 중 옆에 있던 분과 작가 이야기를 나눴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낭만적 서사를 넘어, 오늘날 만남에 지친 세대가 어떤 방식의 접촉을 바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증거입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서점 데이팅 트렌드로 소비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관계 문화에 대한 진지한 거부와, 인격적 만남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정점에서 재발견하는 '인간다움'의 조건입니다. 결국, MZ세대가 서점이라는 오래된 광장 으로 향하는 현상은 문화적 복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술 문명이 가속화될수록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 즉 인격적으로 인정받고, 인격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매우 합리적인 응답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장을 정교하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취향을 분석하고, 최적의 대화 상대를 매칭하고, 감정적 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같은 책의 같은 문장 앞에서 동시에 멈추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 말없이 서가를 함께 걷는 물리적 동행이 만들어내는 안도감,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대화가 쌓아가는 신뢰의 두께. 이것들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인간 관계의 본질적 층위입니다.
미래 사회에서 진정한 경쟁력은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능력, 관계가 익어가는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는 인내의 성숙함', 그리고 나와 다른 사유의 세계를 존중하는 감수성 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서점의 서가 사이를 걷는 젊은 세대의 발걸음은 느립니다. 그러나 그 느린 발걸음이 닿는 곳에서, 알고리즘이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깊이의 관계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시대에 가장 느린 방식으로 타인을 만나려는 이 역설적인 선택은, 우리 사회 전체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종류의 연결을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가, 라고.
오늘도 어느 서점의 조용한 서가 사이에서, 누군가는 데이터가 아닌 진심을 읽어내며 새로운 인연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