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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함민복의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함민복의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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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8]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함민복

 

그는 음식의 영웅

세계적인 주방장

기름 닭 타고 한국을 상륙한 맥아더

 

열한 가지 특제 양념과

정성으로 여러분을 요리하겠다고

티브이 광고까지 하는

지팡이 들고, 안경 쓰고, 가늘고 검은 넥타이 MAN

 

그는 FBI요원일지도 모른다

지령 : 한국 맛의 문화를 정복하라

      조선닭ㅡ토종이 별로 없고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닭이므로 별 죄의식 가질 필요 없음ㅡ의 목을 미국식으로 비틀어라 그래야 미국 자본의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조선의 영계들, 영개들을 공략하라 외가로 유전하던 맛을 끊어라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외가에서 외국으로 맛이 유전하는 시대라는 달착지근한 양념을 처발라라 만국의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식도락가여 단결하라

 

그 누구의 전신상도 조선팔도에

저리 번식력 있게 세워지지는 않았다

저렇게 높은 빌딩을 횃대로, 밤마다,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닭벼슬 쓴,

저 노인의 교묘한 웃음 띤 얼굴

쳐라

치지 못하면 우리가 닭대가리다

                         

 ㅡ『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 1993)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KFC는 맛있으니까

 

  30여년 전의 시다. 이미 그때 이 땅 아이들의 입맛이 바뀌었다. 어른들은 쑥개떡, 감자떡, 청국장, 추어탕, 매생이국, 선지해장국, 도다리쑥국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햄버거, 피자, 치킨, 소시지, 핫도그 등을 좋아하였다. 함민복 시인이 보니까 KFC 가게 앞마다 “지팡이 들고, 안경 쓰고, 가늘고 검은 넥타이”를 맨 할아버지(MAN)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전국에 KFC 가게가 몇 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꽤 많은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흉상이 서 있었을 것이다.

 

  함민복은 이렇게 상상했다. 그는 FBI요원인지 몰라, “한국 맛의 문화를 정복하라”는 지령을 받은. 미국의 농업을 살리고 한국의 농업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저 할아버지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외가로 유전하던 맛의 비밀, 특이한 조리 비법, 그 집만의 비방(祕方)을 다 사라지게 할 저 나쁜 인간.

 

  저 할아버지는 닭이나 마찬가지야. “저렇게 높은 빌딩을 횃대로, 밤마다,/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닭벼슬 쓴,/ 저 노인의 교묘한 웃음 띤 얼굴”을 봐. 저 사기꾼, 저 파렴치한. 저 스파이. 우리들의 입맛이 완전히 바뀌어 미국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즐겨 먹게 하여 토종을 점점 사라지게 할 거야. 안 되겠다. “저 노인의 교묘한 웃음 띤 얼굴/ 쳐라/ 치지 못하면 우리가 닭대가리다”라고 외쳐야지. 시인의 이런 주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한식을 잘 먹지 않는다. 양꼬치, 마라탕, 탕후루의 인기는 한때 대단했다. 나도 파스타와 피자,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아무 부담 없이 먹는다. 식당의 김치는 대개 짜고 매운 중국산이다. 아, 그리고 요즈음 음식점에서 사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이 왜 이렇게 달짝지근한가! 우린 분명히 토종 한국인인데 음식은 왜 토종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함민복 시인]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을 펴냈다. 이 시집에서는 의사소통 부재의 상황에서 밀폐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약속』에서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말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출간하여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집은 그의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다. 시인은 이제 강화도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다. 강화도 사람이 되어 지내는 동안 그의 시는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을 전해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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