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51】 돈 쓰듯 물 쓸 때
돈 쓰듯 물 쓸 때
김선호
깔딱고개 중턱에서 숨을 헉헉 내뱉으며
보거레이 물 좀 있나 나는 벌써 떨어졌다 이대로 오르다간 숨이 꼴깍 넘겠구만 사람 좀 살린다 치고 물병 속히 꺼내레이 이제야 살 거 같다 물이 이래 중하구만 타들던 속이 잦고 힘도 다시 솟는데이 그런 걸 여태 모르고 데면데면 대했구만 그나저나 물병 보니 옛날 생각 짠하데이 앞개울 빨래터에 엄마들이 모여들어 방망이 힘껏 치면서 키득키득 웃었데이 시집살이 설움도 한량 서방 난봉질도 빨래에 담아 때리며 묵은 한을 풀은 기라 땟물을 헹궈내면서 응어리도 헹군 기라 그래 많던 개울물이 지금은 어디 갔는지 바닥에는 잡초들만 제집처럼 똬리 트고 장마철 가끔 한 번씩 손님처럼 다녀간데이 샤워니 사우나니 마구 틀어 흘려버리고 땅속에 있는 것도 죄다 꺼내 닦달하는데 물이라 성깔 없겠노 참다 참다 도망간 기라
돈 쓰듯 물 쓰는 세상 그렇게 뒤집힌 기라

관용구 ‘물로 보다’는, 사람을 하찮게 보거나 만만하게 여길 때 주로 쓰인다. 상대를 물처럼 가볍게 여기고 통제하기 쉬운 대상으로 본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물이 흔하기도 하고 형태가 쉽게 바뀌는 데서 비롯된 것일 테다. 돈을 물 쓰듯 한다거나 물백신, 물수능의 예에서도 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팔구십 년대만 해도 동네 앞 개울에는 빨래터가 있었다. 아낙들이 한 다라이씩 빨랫감을 이고 나왔다. 비누칠한 빨래를 방망이로 두들기고 깔깔거리며 남편 흉을 봤다. 송골송골 맺힌 거품들이 땟물과 함께 떠내려가던 풍경이 환하다. 얼음장 깨고 내복과 이불 홑청 비비던 어머니도 소환된다. 그만큼 개울에는 물이 넘쳐났다.
그런 개울이 지금은 사라졌다. 둑도 가지런히 정비하고 바닥도 매끄럽게 다듬었거늘, 물 대신 잡초들만 무성하다. 물장구치며 미역 감던 웅덩이도 마르긴 마찬가지다. 장마철에 폭우라도 쏟아져야 물맛을 본다. 온난화 탓인지, 과소비 대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심각하다.
오염된 물 마시는 어린이를 클로즈업하여 인류애를 호소하는 TV프로를, 머나먼 아프리카의 얘기라고만 여길 때가 아니다.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2%까지 떨어지고 제한급수 사태를 빚은 게 지난해다. 물을 돈처럼 아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침 모레(3.22)가 ‘세계 물의 날’이다. 행여나 물로 보지 말 일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