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시선 1] 공실
공실
전비담 시인
문을 열고 나가서 문을 닫을까
문을 닫고 나가서 문을 열까
문턱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창백해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보고 있었다
대패질로 다듬은 쪽을 하나하나 이어붙이고 상아색 칠을 할 때
이 탁자에서 생애 최고의 환대를 이루리라
환하게 결심했던 나무탁자
장기판을 사이에 놓고
차 떼고 포 떼고 다 떼주는 줄은 모르고
변함없이 환하던 환대의 탁자
쓰다듬다 보면 닫은 문이 여는 문을 만나게 될까
둥글고 움푹한 그릇에 퍼준 환대가
눈덩이처럼 대출이자를 키웠다
얼음밭에서 눈덩이를 굴렸다니까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이들이 눈덩이를 굴렸고
골목의 개밥그릇에
금세 녹을 눈송이가 수북수북 쌓여갔다
점포정리라는 말을 유리문에 붙이면서
괜찮다괜찮다 해본다
정리라도 할 수 있으니 괜찮다 괜찮다
뼈에 구멍이 나는 병이 돌고 있었다
코로나19도 잠잠해졌는데 상가건물이 뚫려갔다
구멍 난 돌로 쌓은 신전같이
신에게 바친 기도의 쓸모없는 잔해같이
잘리고 뜯긴 벽들이 주인 잃은 탁자에 쌓이고 쌓여갔다
누구도 인수하지 않았고/ 누구도 실종된 신을 찾아오지 못했다
불이 하나둘 꺼져갔고
골다공증을 앓는 도시가 쿨룩 기침하는 새벽
문을 닫자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삶의 이유란 다만 동그란 무덤 하나 만드는 것이기라도 하다는 듯
텅 빈 방들이 몰려와 공허가 웅웅거렸다
-전비담 시, 「공실」 전문

온통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아이엠에프 때보다 코로나 때보다 살기 힘들다고. ‘골목의 등대’가 꺼져간다. 편의점, 치킨집, 구멍가게, 24시간 푸드카페,... 밤을 밝히며 골목의 안전을 지켜주던 불빛들이 꺼져간다. 깜깜한 바다가 되어가는 도시. 퀭하니 불어오는 샛바람에 삐이걱삐이걱 문들이 닫힌다.
인터넷상권 활성화, 코로나19의 후과, 계엄정국의 정치불안, 금리상승,... 사회 구조적 요인들로 인한 경기침체, 소비둔화로 가게 10곳 중 2곳 이상이 폐업한다고 한다. 폐업비용이 없어 문을 닫지 못하고 빚만 키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무덤 같아요. 당선 후 첫 근무를 시작한 새 대통령이 텅 비어 있는 대통령실을 두고 한 말이다. 비어 있는 상가건물들만 무덤 같은 공실인 줄 알았더니 대통령실도 그랬구나. 국정 공백기의 폐허를 메꾸고 일궈가야 하는 새 정부는 상가건물마다 즐비한 공실, 폐업의 빈 무덤까지 떠안고 가야 한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소상공인의 위기를 다룬 티비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한 자영업자의 쓸쓸하고 힘없는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돈다.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골목엔 정의의 구호도 역사의 커다란 슬로건도 아닌 생존의 절박함으로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자영업자들, 힘이 없는 민생의 공실이 늘비했다.
“폐업하고 이자 못 내서 카드론 빌리러 다니고 사채업자한테 매달리고 그러다가 가족들 껴안고 죽고 이러는 거 안 보입니까? 도대체 정치는 왜 하며 권력은 왜 갖습니까?”
새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낸 취임 일성에 기대어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광장에서 깃발을 들었을까, 곰곰이 돌아본다. 나의 시는 어디에서 누구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어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 글은 2025년 6월 25일자 《화성신문》 칼럼 ‘시인이 읽는 세상’21회차 연재글입니다.
《코리아아트뉴스》는 오늘부터 시인 전비담의 칼럼 ‘비담의 시선’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시의 언어로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감성을 담아낼 이번 칼럼은, 도시의 공허와 골목의 온기, 삶의 균열과 희망의 실마리를 그려내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독자 여러분과 마주할 예정입니다.
전비담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