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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규 칼럼] ‘성실의 붕괴: 버티다 무너진 청년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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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망해버린 사람들, 왜 어떤 청년들은 성실하게 살수록 더 빨리 무너지는가 입니다. 성실은 왜 더 이상 안전망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빚을 개인의 무능이나 방만함, 혹은 도덕성의 결함으로 설명해왔습니다. 계획 없이 소비했기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욕망을 좇았기 때문에, 혹은 참을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2026년의 한국 사회에서 청년 부채를 들여다보면, 이런 익숙한 비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사람, 월세와 식비와 통신비를 감당하며 취업 준비를 버틴 사람, 전세사기로 단숨에 수년치 자산 형성 기회를 잃은 사람, 생활비를 메우려다 리볼빙과 마이너스 통장, 고금리 대출과 금융사기의 표적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개 게을러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버티고 책임지려다가 먼저 붕괴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망해버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 청년 세대가 처한 경제 현실을 정직하게 묘사됩니다.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사람, 월세와 식비와 통신비를 감당하며 취업 준비를 버틴 사람, 전세사기로 단숨에 수년치 자산 형성 기회를 잃은 사람, 생활비를 메우려다 리볼빙과 마이너스 통장, 고금리 대출과 금융사기의 표적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게을러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버티고 책임지려다가 먼저 붕괴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망해버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 청년 세대가 처한 경제 현실을 정직하게 묘사된다.

이 문제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최근의 통계와 보고서들입니다. 2024년 법원통계월보 기준으로 2030 청년은 개인회생 신청자의 절반에 달합니다. 서울회생법원의 2025년 상반기 통계에서도 29세 이하가 9.5%, 30대가 26.9%, 40대가 28.0%로 나타나, 결국 회생 제도의 핵심 이용층이 이미 청장년층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더는 일부의 일탈 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청년 부채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세대적 현상입니다.
 

청년에게 빚은 사치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의 입장권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청년에게 빚은 흔히 소비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의 선불금입니다. 대학 등록금, 독립 비용, 취업 준비 비용, 이사 비용, 보증금, 생활비가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 사회에서 청년은 출발부터 이미 마이너스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는 청년에게 자립을 요구하지만, 자립에 필요한 최소 비용은 점점 더 비싸졌습니다. 첫 월급은 낮고 구직 기간은 길며 주거비는 빠르게 오릅니다. 노동소득은 미래를 준비하게 해주기보다 당장의 구멍을 메우는 데 소진됩니다. 그래서 어떤 청년은 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뒤처진 출발선을 복구하는 데 몇 년을 쓰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빚은 선택이 아니라 입장권이 됩니다.


구조적 압박은 여러 지표에서도 확인됩니다. 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청년 인구는 2024년 1,040만4천 명, 전체 인구의 20.1%로 줄어들고 있으며, 번아웃 경험률은 32.2%, 청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4명입니다. 수도권 청년의 주택 이외 거처 비율은 5.7%로 비수도권보다 높았습니다. 이는 청년 문제가 단지 소득의 부족이 아니라, 주거와 건강, 심리와 미래 전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위기라는 뜻입니다.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빚이 단지 통장 잔액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빚은 인간의 판단 환경 자체를 바꿔놓습니다. 내일이 보이지 않을수록 사람은 더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뒤집을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코인, 리딩방, 불법 사채, 보이스피싱, 고수익 알바, 위험한 투자 권유입니다. 외부에서는 이를 무모하거나 탐욕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수 경우 그것은 탐욕이 아니라 절망의 산물입니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비정상적인 출구에 손을 뻗게 됩니다. 빚이 취약함을 만들고, 취약함이 다시 범죄와 착취의 표적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개인 실패의 연쇄가 아니라 취약성을 수익화하는 시장과 제도의 작동 방식입니다.


청년의 실패는 개인의 낙오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비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묻습니다. 왜 청년들은 더 아끼지 못했느냐고, 왜 더 신중하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청년들이 그렇게까지 몰렸느냐는 것입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 새 청년 부채 증가율은 217.9%에 달했고, 같은 기사에서는 대한민국 전 세대 가운데 오직 30대 이하 청년층의 자산만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의 청년은 덜 벌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벌어도 자산 상승 속도와 주거비 상승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이 구조를 외면한 채 개인의 절제만 요구하는 것은 원인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희생양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상상하는 채무 관계도 현실과는 다릅니다. 대중은 흔히 채권자를 선의의 개인으로, 채무자를 무책임한 개인으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채권자의 다수가 거대 금융기관이며, 금융회사는 대출 이자 안에 이미 부실 위험을 반영한 리스크 프리미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금융 시스템은 처음부터 일부의 실패 가능성을 가격에 포함해 작동합니다. 그런데도 실패의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채무자 개인에게만 덧씌워집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균형입니다. 사회는 실패한 청년에게 반성과 낙인을 요구하면서, 그 실패를 대량으로 생산한 금융 구조와 주거 구조, 사기 방치와 정책 공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느슨했습니다. 책임의 저울이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청년 부채를 연민의 언어로만 다루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불쌍한 사람을 돕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를 처리하는 사회의 방식이 지나치게 낡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입니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의 낙인이 되는 사회는 잔인할 뿐 아니라 비합리적입니다. 청년이 부채 때문에 노동시장과 인간관계, 소비와 주거, 가족 형성에서 차례로 이탈하면, 그 비용은 결코 개인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는 생산가능인구를 잃고, 소비 기반을 잃고, 관계 회복 능력을 잃고, 결국 미래의 성장 동력까지 잃게 됩니다. 청년 한 사람의 파산은 사적 불운이 아니라 공적 손실입니다.
 

이 점은 최근 연구에서도 확인됩니다. 2026년 보건사회연구원 분석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한 청년들의 총부채는 평균 19% 감소한 반면,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혼자 버틴 청년들의 부채는 2% 줄어드는 데 그쳤고 신용대출 규모는 오히려 전년 대비 26.7% 늘었습니다. 채무조정을 받은 청년은 우울감이 줄어들 확률이 12.7%포인트 높았고, 대인관계 개선 가능성은 15.1%포인트, 가족관계 안정 가능성은 8.7%포인트 높았습니다. 신규 취업 성공 확률도 중장년 이용자보다 5.1%포인트 높았습니다. 이 결과는 회생과 채무조정이 단순한 빚 탕감이 아니라, 노동시장 복귀와 정신 건강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투자임을 보여줍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재기의 사다리이다.  2026년의 논점은 누가 더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인가 여야한다. 년 부채 문제에 대한 해법은 거창한 구호보다 구체적인 장벽 제거에서 시작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재기의 사다리 입니다. 따라서 2026년의 논점은 누가 더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인가 여야 합니다. 청년 부채 문제에 대한 해법은 거창한 구호보다 구체적인 장벽 제거에서 시작됩니다. 회생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 장벽을 낮추고, 추심의 공포를 즉각 중단시키는 시간 장벽을 없애고, 회생 기간 중 생계 붕괴를 막는 완충 장치를 두고, 지역과 법원에 따라 들쭉날쭉한 기준을 표준화하고, 채무조정과 복지,취업,상담 정보를 한 번에 연결하는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시간이고, 정보이며, 이동 가능성이며, 당장 버틸 수 있는 현금흐름입니다. 제도가 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법은 존재해도 닿을 수 없는 제도가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청년을 훈계하는 일이 아니라, 청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먼저 망하는 사회는 공정하지도 않고 오래 지속될 수도 없습니다. 더 열심히 살라고 말하기 전에, 왜 열심히 살수록 더 빨리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실패를 처벌하는 데 익숙한 사회는 미래를 잃습니다. 반대로 실패 이후를 설계하는 사회만이 사람을 다시 경제와 공동체 안으로 돌려세울 수 있습니다. 청년의 빚을 개인의 낙오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책임지고 끊어내야 할 구조적 고리로 볼 것인지. 2026년의 한국 사회는 이제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조선규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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