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시 /시조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61 ] 홍성란의“금낭화”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배려와 공감의 의미를 잔잔하게 일깨워 주는 작품”

 금낭화

 

홍성란

 

양재역 개찰구를 나온 꼬부랑 할매 둘이 천길 계단 올려다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이쪽으로 가시면 엘리베이터 있어요 오른쪽 가리키고는 총총걸음에 올라와 보니 양산 곱게 쓰신 두 할매 비탈길을 내려간다 이제 가시네요 아이구 또 만났네 젊은이 복 받을껴 암만 암만......

 

금낭화 염치없이 살짝, 주머니를 열었다

금낭화(거창)
금낭화 _ 홍성란 시인 [ 사진 : 박형호 작가]  

홍성란의 「금낭화」는 도시의 삭막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따뜻한 인정과 세대 간의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사설시조다. 시조의 중심 소재인 금낭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다.

 

첫 장면에서 두 할머니는 "천길 계단"을 올려다보며 난감해한다. 여기서 천길 계단은 단순한 물리적 높이가 아니라 노년의 삶이 마주하는 어려움과 세월의 무게다. 화자는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알려주며 도움을 주지만, 다시 만난 할머니들은 이미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다. 이는 인생이 결코 편리한 길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길을 걸어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젊은이 복 받을껴"라는 할머니의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연륜이 담긴 축복이며, 메마른 도시 공간에 피어나는 인간애의 언어이다. 여기서 할머니들은 마치 따뜻한 봄 햇살처럼 묘사되며, 화자는 그 온기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 구절 "금낭화 염치없이 살짝, 주머니를 열었다"는 이 작품의 핵심이다. 금낭화는 본래 복주머니를 닮은 꽃이다. 시인은 꽃을 스스로 주머니를 여는 존재로 그린다. 그 주머니 속에는 돈이나 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배려,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염치없이"라는 표현은 감동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음을 드러내며, 꽃이 마음속 감정을 대신 열어 보이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금낭화는 인간의 선한 마음과 나눔의 가치를 이야기 했다. 계단과 비탈길은 삶의 여정을, 할머니들의 축복은 인간애를, 그리고 금낭화의 열린 주머니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신뢰를 말한다. 짧은 만남 속에서도 아름다운 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배려와 공감의 의미를 잔잔하게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홍성란시인#홍성란시조#시조해설#금낭화#김강호시조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조#좋은시조#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