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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해설] 박숙경의 “슬도에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조 해설] 박숙경의 “슬도에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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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06]

슬도에서

 

박숙경

 

너울의 말 필사하고 비린 문자 읽은 일이

깊고 높고 쓸쓸해서 유서를 쓰는 바다

동공 속 휘몰아치는

오래전 바람 소리

 

벼랑에 앉은 꽃아 파랑을 견딘 사람아

대책도 그 무엇도 없이 울먹이는 파도야

죽어서 다시 살아도

그대라는 장르여

 

해풍이 속엣말을 툭 뱉고 돌아서면

사방은 오지여서 다시 또 쓸쓸해져

저문 빛 저장하려니

눈시울만 뜨겁고

 

ㅡ『심장을 두고 왔다』(가히, 2025)  

슬도에서 [ 사진 : 류우강 기자]

  [해설]

 

   죽을 때까지 부를 연가

 

  시조집을 통독하면서 간절한, 간곡한 연애시가 계속 나와서 시인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는 않았다.) 지금 사랑에 빠졌냐고, 도대체 그 대상이 누구냐고. 어쩜 이렇게 간절할 수가 있냐고. 올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지만 이미 10년 전에 시단에 나온 분이다. 한라일보를 찾아보니 1962년생이시다. 늦깎이로 시조시단에 나와서 그간 쟁여둔 시조를 묶어 바로 시조집을 냈다. 가히 시선 14권째인데 이 시리즈의 시조집으로는 세 번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 슬도를 찾아보았다. 울산 방어진항의 끝 어촌 마을 동진포구 바다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으로 대부분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에 촘촘히 나 있는 구멍들은 모래가 굳어진 바위에 조개류 등이 파고 들어가 살면서 생긴 것으로 보이며, 슬도 주변으로 바다의 수심이 낮고 작은 암초들이 산재해 있다.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슬도(瑟島)라 불린다.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하여 시루섬 또는 섬 전체가 왕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방어진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섬에 갈 수 있고,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홀로 슬도를 지키고 있다.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변에 활어직판장 등 횟집이 있으며 인근의 대왕암공원을 둘러봐도 좋다.

 

  3수로 이뤄진 이 시조의 특성은 바다와 파도와 해풍이 다 의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다는 유서를 쓰고 있고 파도는 울먹이고 있고 해풍은 속엣말을 툭 뱉고 돌아선다. 화자가 왜 이렇게 괴로운 심정으로 슬도까지 가는 해변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몰래 하는 사랑이라 견우와 직녀 만나듯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를 그리워하며 바닷가를 거닐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닭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하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죽어서 다시 살아도/ 그대라는 장르여” “저문 빛 저장하려니/ 눈시울만 뜨겁고라는 2개의 종장을 봐서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생각난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처럼 슬도에 온 화자는 오매불망 그대를 생각하는데, 살아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나 보다. 그대를 생각하면 그저 눈시울만 뜨거워진다.

 

  신이시여! 이들이 저승에 오면 부부로 살아가게 하소서! 저 여성이 더 이상 울면서 슬도에 가지 않게 하소서.

 

  [박숙경 시인]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2015년 《동리목월》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202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조로도 등단했다. 시집 『날아라 캥거루』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가 있다. 2025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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