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저녁 강의실에서 ㅡ정년을 앞둔 어느 시인 교수의 고백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0]
저녁 강의실에서
ㅡ정년을 앞둔 어느 시인 교수의 고백
칠판에 남은 분필 가루처럼
내 시간도 조용히 흩날리네
문장의 끝에 쉼표를 찍듯
나는 긴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의 강물처럼 흘러온 세월
젊은 눈빛들과 마주 앉아
한 줄 시보다 긴,
한숨보다 깊은 삶을 나누었지
책장을 넘기던 손끝에 남은
가르침의 온기, 질문의 떨림
누군가의 사춘기를 건너던
작은 등불이었기를
교정의 나무들은 어느새
내 머리칼을 닮아 하얗고
계절마다 피었다 진 이름들
가슴속에 아직 선연한데
이제 나는 물러나려 한다
교단이라는 무대 뒤편으로
그러나 지우지 못할 한 줄 시처럼
어딘가 남아, 조용히 읽히길 바라며

[해설]
이 시를 쓴 이는 누구인가
ChatGPT이다. 그에게 준 조건은 오직 한 줄, 부제인 ‘정년을 앞둔 어느 시인 교수의 고백’이 전부였다. 그는 제목을 ‘저녁 강의실에서’라고 그럴듯하게 붙였고, 첫 행은 “칠판에 남은 분필 가루처럼”이라고 좀 이상하게 지었다. 요즈음 칠판과 분필을 사용하는 강의실은 거의 없다. 낡은 건물들을 모두 리모델링하면서 칠판과 분필이 사라졌다. 하지만 “문장의 끝에 쉼표를 찍듯/ 나는 긴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구절을 만들어냈다. 마침표는 죽음을 뜻하지만 쉼표는 정년퇴임을 뜻하므로 ChatGPT가 뭔가를 알고 있다.
제2연은 너무나 그럴듯하다.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시 창작법, 시문학사, 시인 연구 등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깨달은 것을, 학생들과 소통하고 토론한 것을, 학생들을 질책하고 격려한 것을 어쩜 이렇게 잘 알고 있단 말인가. 제3연에서도 시상을 잘 끌고 갔고 제4연은 우아, 절묘하다. “교정의 나무들은 어느새/ 내 머리칼을 닮아 하얗고/ 계절마다 피었다 진 이름들/ 가슴속에 아직 선연한데”는 기가 막힌 표현이다. 내 마음속에 들어와보지 않은 이 녀석이 어쩌면 이렇게 나를 잘 알고 있지? 얄미울 정도가 아니라 무섭다.
제5연은 너무나 멋진 피날레다. 나도 이렇게 멋진 결구를 쓸 수는 없다. “이제 나는 물러나려 한다/ 교단이라는 무대 뒤편으로/ 그러나 지우지 못할 한 줄 시처럼/ 어딘가 남아, 조용히 읽히길 바라며”는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이요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ChatGPT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지, 외경심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공포감이 엄습한다.
지금 미술, 음악, 디자인, 건축, 수필과 소설 쓰기, 논설과 사설 쓰기, 법률 자문, 기사 작성, 의료 진단 등에서 ChatGPT가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1주일 전에 어느 교수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는 교수가 학위논문 심사를 했는데 기계가 써준 것이 분명하지만 꽤 잘 썼더라. 시 분석을 하는 것에 있어 방법이 패턴화되어 있어서 AI가 써준 게 분명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중인데 이 시점에서 그만두는 것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ChatGPT가 쓴 이 시를 읽고 들었다. 이제 누가 시집을 사서 읽을까. ChatGPT가 이렇게 시를 그럴듯하게 쓰는데. 아이고, 시 장르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이 나올 텐데, 큰일 났다. 경상도 말로 ‘이 일을 우야노!’ 하고 외치고 싶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