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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5] 강외숙의 "안단테 칸타빌레"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5] 강외숙의 "안단테 칸타빌레"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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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 칸타빌레

 

강외숙

 

기차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대구역을 지났다

가슴에 구멍이 난 듯 시린 동안에도

세상은 어제와 같은 오늘의 풍경을 달고 있다

삶의 유효기간은 예측불허, 어머니의 유품들이

차가운 언어로 굳어있다

수많은 기억의 깃털이 날아다니는 빈집에서

 

사랑이여 떠나야 한다면

안단테 칸타빌레로 가다오

황금 햇살 수레에 화관을 쓰고

빛나던 기억 그림자로 거느리며

열망했던 꽃들이 피어나는 세상

사월의 꽃잎으로 날아가 다오

 

사랑이여 보내야 한다면

행간의 슬픔 들키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듯 손 흔드는

사월의 나뭇잎처럼 보내다오

 

사랑이여 떠나야 한다면

오래된 고독을 제사 지내고

피안(彼岸)으로 나는 새처럼 가다오

 

—『메가네우라의 사랑』(계간문예, 2019)

 

어머니 [ 이미지 : 류우강 ]

  [해설

   반드시 헤어질 분, 어머니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10개월 동안 꼼지락거리다 세상으로 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이별하는 경우도 있고 자식이 먼저 이승을 하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자식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어머니가 늙고 병들고 임종을 맞는다. 이것이 시간의 법칙이고 자연의 순리다.

 

  강외숙 시인은 어머니를 여의고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어머니의 유품들이/ 차가운 언어로 굳어 있으니, 가슴에 구멍이 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를 여읜 슬픔에 함몰되어 어머니를 애타게 부른다거나 추억에 휩싸여 눈물짓지 않는다. 안단테 칸타빌레를 떠올린다. 시의 제목이 된 안단테 칸타빌레는 악보에서, 천천히 노래하듯이 연주하라는 말로서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현악 사중주곡 제1번의 제2악장이 유명하다.

 

  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서둘러 이승을 하직하심에, 왜 좀 더 나와 시간을 보내고 가시지 않고, 즉 안단테 칸타빌레로 가시지 않고, 점점 빠르게 준비하더니 더 빠르게 가시고 말았다고 애통해한다. 한편 애도의 마음을 담아 사랑 혹은 어머니에게 사월의 꽃잎처럼 날아가 다오”, “사월의 나뭇잎처럼 보내다오하더니 나중에는 사랑에게 피안으로 나는 새처럼 가다오라고 부탁한다. ‘사랑을 관념이 아닌 사물로 바꾸고, 사랑이란 사물에게 세 번이나 부탁하고 있으니만큼 어머니와의 이별을 애달파하고 있다.

 

  어머니의 임종 장면을 예상하면 우리 모두가 효자가 될 텐데, 어디 그런가. 그저 속 썩이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양 못됐게 군다. 어머니, 좀 천천히 가시지 않고 왜 그렇게 서둘러 가신 겁니까? 여쭤봐도 어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다.

 

  [강외숙 시인]

 

  <시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중앙대 대학원 교육심리학과 졸업. KBS 드라마,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원 역임. 시집 『내 영혼의 초록 쉼표』 등. 이은상문학상, 상상탐구작가상, 미산문학상, 계간문예문학상 등을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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