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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45] 한상순의 "다시 태어나도"

이승하 시인
입력

다시 태어나도

 

한상순

 

나 죽어 다시 태어나도

가슴에 하얀 초승달을 단 반달곰으로 태어날 거야.

 

구멍 뚫린 배에서 쓸개즙을 흘리는 대신

막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릴 테야.

아빠랑 머루 다래를 따고 밤 도토리를 주울 테야.

쇠창살 안에서 죽은 곰처럼 눌려 살지 않고

지리산 골짜기를 누비며 신나게 살 거야.

온 식구 함께 모여 동굴 밖

함박눈 소록소록 쌓이는 날,

꿈에도 소원이던 겨울잠을 실컷, 배부르게 자 볼 테야.

곰답게, 정말 곰답게 멋지게 살아볼 테야.

 

―《동시발전소》(2025년 겨울호

다시 태어나도 _ 한상순 시인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아아 너무나 불쌍한 곰

 

  곰의 쓸개 웅담은 수천 년 전부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약재로 쓰였다. 아마도 한약재의 주요 재료이기도 할 것이다. 연변 여행 때 곰 사육장에 가보았다. 수십 마리의 곰이 수십 개의 철창 안에서, 즉 각자 독방에서 산 채로 쓸개에서 나오는 즙을 채취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판매소에서는 웅담으로 만든 온갖 약재를 팔고 있었다. 중국에 이런 곰 사육장들이 많다는 얘기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는 얘기를 조선족 판매원에게 들었다.

 

  한상순 동시작가도 어디 가서 그 곰들을 본 모양이다. 울분에 가득 차 이 동시를 썼을 것이다. 아이들이 주요 독자인 것이 동시지만 어른들이 읽기를 원하면서 썼을 것이다. 구멍 뚫린 배에서 쓸개즙을 흘리고 있는 반달곰들. 인간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그 곰들의 눈을 보니 다 넋이 나가 있었다. 슬픔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그 곰들은 산에서 잡혀 와서 인간에게 좋다는 쓸개를 바치는 노예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먹는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들이 다 어찌 보면 사육되고 있다. 생선 또한 그런 셈이고. 하지만 곰의 쓸개 채취 같은 것은 산 채로 학대하는 것이므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올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무나 덫에 걸려 죽는 짐승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한상순 시인]

 

  1999년 《자유문학》을 통해 동시로 등단. 동시집 『거미의 소소한 생각』『병원에선 간호사가 엄마래』『세상에서 제일 큰 키』『딱따구리학교』『뻥튀기는 속상해』 등을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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