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26] 숨으로 노래한 여왕― 몬세라 카바예

소프라노 지영순 전문위원
입력
여백이 음악이 된 순간-몬세라 카바예의 호흡이 남긴 유산

스페인이 낳은 전설적 소프라노 Montserrat Caballé는 성량이 아니라 호흡과 여백으로 오페라의 미학을 바꾼 인물이다. 그녀의 노래는 밀어붙이지 않는다.

전성기때의 몬세라카바예

소리는 날아오르기 전, 이미 숨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카바예의 음악은 언제나 부드럽고도 위대하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숨의 예술

몬세라 카바예는 193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은 그녀의 언어였다.

몬세라카바예

바르셀로나 리세우 음악원을 거쳐 독일 바젤 오페라 극장에서 경력을 쌓은 그녀는 오랜 시간 조연과 대역을 맡으며 무대의 중심을 조용히 준비했다.

 

카바예의 초기 경력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긴 준비의 시간은 훗날 한 번의 기적으로 폭발하게 된다.

 1965년, 한밤의 기적

1965년 뉴욕 카네기홀. 도니체티의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자〉 공연에서  급작스럽게 대역으로 무대에 오른 카바예는 단 하룻밤 만에 세계를 놀라게 했다.

몬세라카바예

그녀의 고음은 칼처럼 날카롭지 않았고,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레가토로 관객을 압도했다.


숨이 끊어지지 않는 듯한 그 노래는 ‘숨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이날 이후, 몬세라 카바예는 벨칸토 오페라의 기준이 되었다.

소리를 밀지 않는 기술 

카바예의 노래는 성량을 앞세우는 디바들과 달랐다. 그녀는 소리를 앞으로 던지지 않고, 호흡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몬세라카바예, 연주회 장면

이 방식은 성대를 혹사하지 않으면서도 극적인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고음은 늘 넓고, 둥글고, 안정적이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단순한 명연이 아니라, 성악 발성의 하나의 철학이었다.

경계를 허문 만남

몬세라 카바예는 오페라 무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록의 전설 프레디 머큐리와의 협업을 통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물었다.

프레디머큐리와 콜라보 연주 장면

이 만남은 누군가의 격을 낮추지 않았고, 서로의 세계를 존중한 사건이었다.


카바예는 여기서도 힘으로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숨으로 노래했다.

 

여백이 남긴 시간

몬세라 카바예는 파격의 디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위대해지는 디바였다.

현재형 교과서라 불리는 디바 몬세라 카바예

그녀의 노래에는 늘 여백이 남아 있었다.
그 여백은 관객이 숨 쉴 자리였고,
음악이 오래 머무를 공간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카바예의 음성은 ‘옛 녹음’이 아니라 현재형 교과서로 불린다.

숨이 음악이 될 때

몬세라 카바예는 목소리를 키우지 않았다. 대신 숨을 키웠다.

 

그 선택은 오페라의 미학을 바꾸었고, 후대 성악가들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Casta Diva; Norma; Bellini; Liverpool 1992

 

Soprano  디바돌체  지영순 교수 

지영순 교수

이화여대 성악과 졸 
이탈리아 빠르나조아카데미아 졸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제아카데미 아디플로마 
러시아 쌍페떼르부르그음악원 디플로마 
오페라 라보엠,카르멘,휘가로의 결혼 등 주역 출연 
주성대,청주대,서원대,경기대대학원 강사 역임

현, 뮤직라이프 대표,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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