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4】 산에서 축구라니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수정

산에서 축구라니

김선호 

 

  불콰한 노인 서넛 혀가 꼬여 지껄이는데

 

  매시도 손흥민이도 온다 소리 없드마는 화수분서 새끼 치듯 관중 느니 우짜겠노 그기 다 돈 아니가 되돌리기 찝찝한 기라 잔꾀를 궁리하다 떠오른 기 산이라데 마라톤도 자전거도 산에서 다 잘하는데 축구라 못할쏘냐며 명산 골라 옮긴 기라 넓은 데다 풀어놓니 경기마다 장관 아니가 끼리끼리 편을 갈라 단장하고 내달리면 관객도 소릴 지르며 신들린 듯 빠져들드만 과열된 경기장은 심판도 무색한 기라 노란 경고 빨간 퇴장 아무리 내밀어도 보란 듯 분칠 더 하고 종횡무진 날뛰드만 사람이나 자연이나 물들기는 한가지라 색깔을 정해 놓고 편 가르는 저들이나 시새워 잘 보이려고 부대끼는 단풍이나 그래도 나무들은 한결같이 물드니까 간 보면서 색깔 바꾸는 저들과는 딴판이니까 자연은 휘황찬란하고 저들은 유치찬란한 기라

 

  술이 좀 깨서 그런지 뒷말은 그럴듯하네

단풍사진
곱게 물든 산

유난히도 가을비가 잦았다. 적은 일사량으로 단풍도 시원찮겠다는 예보와는 달리 산이 활활 타오른다. 가을이면 나무들은 떨켜를 만들어 잎 떨굴 채비를 한다. 광합성으로 얻는 에너지보다 호흡 활동에 드는 에너지가 많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비효율적인 광합성을 멈추고 에너지를 뿌리에 저장하는 묘수를 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뭇잎에 들어있던 성분들은 단풍을 빚는다. 녹색인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황색 계열인 카로티노이드는 노랑 단풍으로, 빨강이나 보라색 계열인 안토시아닌은 빨강이나 자주색을 만든다. 울긋불긋 타는 산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누가 더 아름다운가를 치열하게 겨루는 그들, 과열을 식히려고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내보지만 소용없다.

 

하지만 그게 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다니!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삶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정점에 선다(하략)’도종환 시인은 「단풍 드는 날」을 이렇게 노래한다. 집착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채찍으로 들린다.

 

나무가 물들 듯 사람도 색깔 속에 갇힌다. 노선이나 정당마다 특정 색깔을 입고 뭉친다. 처음에 골라잡은 색깔과 평생 함께할 것 같지만, 그러나 수시로 옷 갈아입는 정치인을 흔히 본다. 이념이나 소신도 당락의 저울질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나무도 갈아입는데 뭔 대수냐고? 합리화 궤변이, 오색찬란한 단풍 앞에 유치찬란하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시인 김선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선호시인#사설시조해설#산에서축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