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17】문순자의 "비와사폭포"

비와사폭포
문순자
때아닌 역병으로 병원도 한산하다
사나흘이 멀다하고 중환자실 따라들면
콸콸콸 산소호흡기
폭폭소리 들린다
비가 와야 폭포다, 비와사폭포란다
서귀포 악근천 상류 협곡을 끌고 와서
한바탕 둑 터진 가슴 비워내고 가는 벼랑
길어봤자 사나흘
비 그치면 도루묵인데
아프다, 아프다는건 살아있단 반증이다
어머니 한 생애 같은
엉또폭포 울음 같은
비가 내려야만 볼 수 있는 폭포가 있다. 서귀포 강정 악근처 상류에 있는 엉또폭포다. 제주어로 ‘엉’은 작은 바위나 동굴을 말하며 ‘또’는 입구를 말한다.
문순자 시인의 「비와사폭포」는 “비가 내려야”라는 제주어적인 표현을 가져와 제목으로 재치 있게 썼다. 뿐만 아니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중환자실 산소호흡기 소리와 연결 짓는 것도 이색적이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침묵의 틈을 비집고 흐르는 소리다. 그것은 기계음이지만 생의 미련이 깃든 울림이다. 콸콸콸 산소 호흡기에서 쏟아지는 공기의 흐름은 생명을 잇는 마지막이자 존재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엉또폭포는 아무 때나 흐르지 않는다. 오직 장맛비나 큰 비가 내려야 격렬하게 쏟아진다. 그만큼 귀하다. 어쩌면 어머니의 호흡도 그렇다. 병마에 허물어진 몸은 한 차례씩 깊은 숨, 내쉴 때마다 폭우 속 폭포처럼 벅차고 찬란하다. 사나흘쯤 버티다 잦아드는 폭포처럼 그 숨결도 언젠가는 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며칠 사이에 생은 맹렬하다.
엉또폭포가 잠시 물결을 열 듯, 중환자실에 있는 어머니도, 삶에 지친 이들도 힘들고 아프겠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반증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조금 더 내보면 좋겠다. 그 물소리가 울음이거나 작별일수도 있겠지만 동트기 전 어둠 같은 찬란함일 수도 있겠다.
아프다는 건 여전히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삶의 한 부분이 지금 장맛비에 쏟아지는 폭포처럼 흐르고 흘러가고 있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 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