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해설]김복근의 "술 주酒 ㅡ파자破字 27"

  술 주酒

  ㅡ파자破字 27

  김복근


  닭[酉]이 물[⺡] 마시듯

  술은 배신하지 마라

  비어버린 술잔에 한숨이 차오르모

  술에게 술을 권하며 오관이 벌게질 끼다

  나는 내 말을 하고 싶어 술을 마시고

  술은 지 말을 하기 위해 나를 마신다

  그라모 술도 취하고 나도 취할 끼다

  술이 나를 마시다가 두 손을 잡아주모

  허풍시이 같은 나는 눈물을 펑펑 쏟고

  세상은 지 맘대로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갈 끼다

  ㅡ『밥 먹고 싶은 사람』(황금알, 2025)

  [해설] 

   술이 나를 마신다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다.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잃고 계속 마시게 돼 결국 뻗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김복근 시인이 이번에 낸 파자 연작 시조집의 27번째 시조에 나오는 구절은 다르다. “나는 내 말을 하고 싶어 술을 마시고/ 술은 지 말을 하기 위해 나를 마신다”는 대목에 이르러 옳거니! 무릎을 쳤다. 술을 의인화해 술과 내가 대작하는 식으로 설정, 기막힌 반전을 꾀하였다. 하모, 술도 취했으니 나도 취할 끼다. 갈 데까지 가는 기다. 이놈의 세상! 술만큼 나를 위로해주는 벗은 없었다. 술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함 해보자.

  제3수 초장과 중장도 절묘하다. “술이 나를 마시다가 두 손을 잡아주모/ 허풍시이 같은 나는 눈물을 펑펑 쏟고”라니, 김복근 시인은 술맛과 술의 멋을 알고 계신 분이다. 복 받은 분이다. 술을 마시기만 하면 펑펑 운 박용래 같은 시인도 있었지만 주당이라면 이런 경험을 다들 해보았을 것이다.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 꺼이꺼이 울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니 와이카노? 무슨 일 있었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셔본 술이 금복주 한 병이었다. 김천시 외곽을 흐르는 감천을 보면서 빈속에 안주도 없이 병나발을 끝까지 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장기결석생으로 퇴학을 당했으니 죽고 싶었다. 백수광부처럼 술 마시고 취중에 투신자살할 생각을 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집에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가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노래를 불러댔다. 24시간 내리 꿀잠을 자고 술에서 깨어났을 때, 정신을 차려 검정고시 준비할 결심을 했다.

  김복근 선생님! 저 창원에 가면 술 사주실 건가요? 세상은 지 맘대로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갈 끼고, 저는 소주 딱 네 잔만 마시면 취합니다.

  [김복근 시인]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마산고, 진주교대, 창원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5년 《시조문학》에 천료되어 시조집 『인과율』『비상을 위하여』『클릭! 텃새 한 마리』『는개, 몸속을 지나가다』『새들의 생존법칙』 『비포리 매화』, 논저 『노산시조론』『생태주의 시조론』, 동시집 『손이 큰 아이』, 괘관문집 『바람을 안고 살다』 등을 펴냈다. 마산시문화상, 한국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유심작품상을 수상했고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경상남도문인협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부이사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부의장, 노산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장, 창원대, 진주교대 강사를 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문학인신문> 논설위원.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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