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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위드 작가의 손손손 - 박양근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위드 작가의 손손손

 

 박양근

 

    인류라는 포유류는 땅을 딛고 일어나 손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 다른 동물에게 없는 '두 손' 덕분에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진화하여 거친 들판에 문명을 이루었다. 손으로 만진 그것들마다 이름을 붙이고 인간과의 관계를 글로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별에서 진화한 인간의 손은 도구적 수단이면서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 멀리서 손을 흔들어 사람을 부르고 상대의 몸을 쓰다듬거나 밀쳐 애증의 감정을 표현한다. 손을 잡는 몸짓은 화해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말은 단절과 좌절을 나타낸다. 손이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표현한 손 중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아담의 창조>에서 볼 수 있다. 창조주와 맞닿은 최초 인간 아담의 손가락은 생명을 부여받는 환희의 순간을 포착하였다. 그 후 로댕은 <칼레의 시민들>에서 생을 남겨 두고 떠나는 자의 돌아보는 손을 조각했다. 스페인 명장 엘 그레코가 그린 기사의 손은 일명 '이야기하는 손'으로 우아한 감정이 넘쳐난다. 어찌 보면 예술가들은 입이 아니라 손과 손가락으로 사람의 흉중을 전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손과 함께 생존한다. 손에 움켜쥐었다가 놓치고 다시 잡으며 살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손의 전생全生이 사람의 일생一生이다.  그만큼 인간의 손은 자아 실존의 물음과 해답을 책임진다. 손의 지문만큼 독특하고 개성적인 것이 없다. 뼛속까지 외로운 생, 그 쓸쓸함을 견디며 몸부림쳐 온 평생을 손의 지문이 증언한다. 손에 새겨진 지문. 그것은 전생이고 현생이고 후생의 문양이다. 

    작가의 손은 삶을 표현하기 위해 움직이므로 평범하지 않다. 작가의 손은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활자를 친다. 이야기가 책이라는 몸을 가질 때까지 노역하므로 작가의 신체 중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것은 손이다. 그는 오랜 타이핑으로 손가락 끝에 통증이 오더라도 책이라는 분신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손의 운명이 힘겨운데 어찌 작가가 편안하기를 기대할 건가. 

   

   작가의 손은 인간 세상이라는 늪지대 밑바닥을 휘젓는다. 왜 사느냐에 대한 목마른 질문을 해결할 샘물을 길어 올린다. 몸을 지켜주고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주는 것도 손이다.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아픔이 작가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런데 많은 작가들이 그 손의 책무와 소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방심의 쉼표를 찍고, 기약 없는 말줄임표를 찍고, 포기하는 마침표를 찍는다. 그 손을, 그 손가락을 그냥 쉬게 해서는 안 된다. 작가이므로 '위드 작가의 손'을 지켜야 한다. 

    

    문학은 손이다. 뜨거운 불 속이든, 깊은 물 속이든, 따지지 않고 뛰어들어 구원해 주는 생명의 밧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가의 손을 보험에 들어줘야 한다. 독서라는 보험이다. 책 읽기라는 보험은 사람의 정신이 파산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작가는 독자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듣고 독자는 작가를 통해 평소 멀리했던 인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므로 책을 더 진지하게 쓰고 읽을 필요가 있다. 

 

    종이 위로 연필이 구르고 자판 위에 손이 얹히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무릎 꿇지 않은 기도이며 눈물로 세상을 읽고 걷는 수행이다. 손은 눈보다 더 본능적으로 시대의 아픔을 꿰뚫어낸다. 

    

    세상을 눈물 젖은 두 손으로 받치는 사람이 작가다. 그러므로 지금의 글이 시원찮다고 하여 "위드 작가의 손'이 나태해서는 안 된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진실眞實은 초시간적으로 거짓이 없는 사실을 지칭한다. 사람들은 증거와 경험을 과신하여 눈에 보이는 사실(팩트)만을 절대시한다. 사실에 함몰되어 삶의 원형인 진실을 쉽게 망각한다. 진실을 일러주는 문학은 사실을 넘은 의미와 상징으로 짜여진다. 인간은 평소에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사실만을 보지만 문학에 익숙해지면 삶을 정관함으로써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행위가 문학적 인식이다. 

 

    작가라면 적어도 예술적 기법을 빌려 사실에 내포된 진실을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쉬르는 고금을 뛰어넘어 문학과 진리를 결합한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그들은 작가는 사실을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보여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였다. '실감나게','그럴듯하게', 사실보다 더 '사실답게'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성은 '진실스러움'을 우선으로 한다. 피카소도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수필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구현하고 전파할 일은, 진실(팩트) 너머에 있는 진실을 감각적이고 정서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으로 발굴해야 한다. 수필을 하는 이유는 창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외적 경험과 내적 상상이 하나가 된 진실의 반지를 낀 손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이슬람의 속담에 "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만큼 순결하다."가 있다. '눈은 눈으로' 말하는 이슬람인들조차 학자는 순교자만큼 순결하다고 말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칼이 잔혹한 복수와 살인을 쫓는다면 펜은 순결한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펜은 칼 없이 적을 복종 시킬 수 있다. 

 

    손바닥에 놓인 스마트폰 안에 온 세계가 들어있고 동서고금의 글이 담겨 있다. 오늘의 작가는 스마트폰 하나만을 손에 쥐고 온 지구를 누빌 수 있다. 그 모든 필진을 운행하는 것이 문학의 손이다. 

 

    황량한 벌판 같은 백지 위에 생명의 글 꽃을 피운다. 짐짓 물러서더라도 송곳처럼 돌진하여 글줄을 뻗는다. 문장과 행간을 몸의 기운에 따라 빠르고 느리게, 부드럽고 강하게 조절한다. 무엇보다 인자하고 유연하게 사람을 껴안는다. 사랑과 정의와 자유를 잊지 않는다. 조선의 박지원, 허균, 정약용, 이용휴, 이덕무 등은 비운을 마다하고 이러한 무도武道같은 문도文道를 지켜온 선배임이 자랑스럽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문인이 지켜야 할 삶은 '위드 작가의 손손손'이 아닌가 한다. 

    장인이 명검名劍을 만든다면 진정한 문객은 명필名筆을 만든다. 

[심향 단상]

 

    글을 쓸 때 작가는 진실해야 되고, 진실한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또한 삶을 진실 되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이 바탕을 이루어야 행동이 진실 되게 나타날 수 있고 진실한 글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느껴지지 않는 작가의 글은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고, 그래서 생명력도 오래갈 수 없을 것입니다. 

 

    화자는, 작가는 '책 읽기'라는 보험에 들어야 하고, 사실을 더 '사실답게(진실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다양한 책을 읽음으로써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간접 경험들이 쌓여 내용이 풍부한 글쓰기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작가가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 사고의 폭은 넓어지기 힘들고, 그로 인해 독자의 마음 속에 깊은 느낌이나 흥겨움을 주기 어렵게 됩니다. 

    독자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곧 글은 그 사람입니다. 

   

    평생 손이 하는 일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글을 쓰고 하는 일상적인 일 말고도 손은 말 대신 많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검지 손가락을 내저으면 '아니다' '하기 싫다'는 뜻이 되고 엄지과 검지 손가락을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들어 '좋다(오케이)'는 표시도 하고, 두 손의 검지 손가락을 엇갈려서 엑스(X)를 만들면 '반대' '싫다'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며, '잘가'라는 인사를 할 때는 손바닥을 펴서 흔들기도 하고, 손가락과 손가락을 둥글게 맞붙여 '사랑(하트)한다'는 표시도 합니다. 요즘은 간단하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사랑한다'는 표시도 합니다. 두 손으로 상대방을 포근하게 감싸주어(포옹) 사랑의 마음이나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악수는 친밀감을 나타내는데, 만나서 반갑다는 뜻으로 하며 손을 맞잡으면 상대방의 체온과 악력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첫 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악력이 강하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볼 수 있는데, 악수할 때 너무 세게 잡으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됩니다. 가볍게, 부드러운 악수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작가의 손은 생각을 글로 옮기기 위해 종이 위에 볼펜이나 연필로 바삐 써 내려가기도 하고,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며 글을 완성해나가느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종종대는 발보다 손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발은 가만히 있지만 손은 계속 밥과 반찬을 먹는데 사용해야 되고,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도 발이 쉬고 있는 동안 손은 쓰거나 치거나 조립하거나 두드리거나 하는 등의 일을 끊임없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한 손을 다친다면 두 손으로 하던 일을 한 손으로 해결해야 할 때의 그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손은 늘 글을 종이에 쓰고 원고를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빠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느라 생각의 속도만큼 손의 속도도 따라서 바삐 움직이게 됩니다. 

 

      제가 비록 실력은 부족하지만 화자의 말처럼 '펜이 칼보다 강하다' 라고 하니 용기와 자부심을 가지고 글쓰기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제 글을 읽는 독자들께 실망감을 주지 않고, 읽고 싶어 글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되기 위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경험을 하기 위한 노력과 책 읽기를 통한 간접 경험도 성실하게 할 것을 다짐합니다. 

    

   '책 읽기 보험'에 들었다면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한 보험의 질을 높이면 자연히 높은 수준의 글이 완성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작가의 책임이겠습니다. 

   

   무릎 꿇지 않은 기도이며, 눈물로 세상을 읽고 걷는 수행! 세상을 눈물 젖은 두 손으로 받치는 사람이 작가다!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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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코리안드림문학 편집위원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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