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아카데미] 김강호의 "자드락비"
자드락비
김강호
저, 허공
연금술사가 하늘을 주물러서
배 주린
사람들에게 실컷 먹어 보라며
국수를
찰지게 뽑아 내려주는 잔칫날

우리는 IMF라는 큰 고비를 넘겼다. 아무리 가난해도 배는 곯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도 가난의 대물림이 있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름날 논밭에서 온몸으로 자드락비를 맞으며 일했던 나에게 때로는 가난이 달콤했다. 특별한 체험이 시조의 소재가 되었다면 감사할 일이다. 한때의 경험을 되살려 시적 언어로 자연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을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이름 모를 어느 화가의 성근 붓질 같은 그림을 상상해 보았다.
어릴 때 잔치집에 가면 챙겨주는 것이 국수 한 사발이었다. 맛깔난 양의 국수 한 사발과 자드락비가 지금 이 시조를 빚게 한 것이다. 소나기를 국수로 보는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주린 날 농촌의 생활상 덕분이다.
시조 창작과정에 있는 예비 시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라면 스치는 바람에 불과하므로, 비가 가난한 이를 위해 내리는 국수라고 명명했을 때 시조의 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포커스를 맞추면 좋겠다. 또한 끊임없이 당부하는 것은 다상량이다. 하나의 소재를 놓고 무한대의 생각을 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많은 상상 속에서 추려내는 줄기와 뼈대가 시조라는 한 채의 집이 되고 시를 찾아온 이들이 그 집에 들어앉아 잠시 쉬어갈 휴식처가 된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어린이 시조’로 찾아온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