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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49] 박완규의 "선풍기야 미안해"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49] 박완규의 "선풍기야 미안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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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해설]

 

선풍기야 미안해

 

박완규

 

우리 집 선풍기

나보다 나이가 두 배

삼촌 나이와 같다

 

삼촌 태어나던 무더운 여름

처음 안방에 들어와

나도 키우고 동생도 키우고

 

올 여름 누나 방에

네모난 에어컨이 들어왔다

옆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삼촌과 누나

 

학교 갔다 오니

동그란 선풍기 소리가 다르다

누나 방에 다 간다고

뾰로통한 소리

 

얼른 다가 앉아 먼지부터 닦았다

선풍기야 미안미안

우리 식구 대표로 내가 사과했다

 

ㅡ『딱따구리 망치소리』(기획출판 반딧불, 2020)

 

 

선풍기야 미안해_박완규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아날로그와 디지털에서 AIchatGPT

 

  옛날 옛적에는 여름날 최고의 선물이 부채였다. 부채가 보내주는 바람이면 삼복더위도 넘길 수 있었다. 남편이 월급날 아내에게 생색내면서 선물하던 것이 양산이었다. 펌프로 물을 길어올려 등목을 해본 경험을 7080대 노인분들은 상당수 해보지 않았을까? 옛날 옛적에는 40도에 가까운 살인적인 더위도 선풍기만 있으면 견딜 수 있었다. 기계가 회전하면서 바람을 보내주니 기특하였다.

 

  그런 것을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와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기계는 기계지만 사람의 손을 꽤 필요로 하였다. 인력으로 조작해야만 말을 듣는 착한 기계인 아날로그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의 시대가 왔다. 선풍기가 창고로 들어가고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예약, 해제, 자동 같은 말이 우리 귀에 자주 들려왔다. 그런데 이 동시 속의 아이는 애어른이다. 디지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그렇다. 에어컨이 작동되는 방에서 1시간만 있어도 두통이 온다. 2시간이 지나면 기침이 나고 3시간이 지나면 오한이 난다. 4시간을 참고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 식사하러 음식점에 가도 에어컨의 찬바람이 나한테로 오면 일어나서 사각지대를 찾아가 다시 앉는다.

 

  선풍기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지막 세대가 박완규 시인의 세대일 것이다. 지금 신세대는 AIchatGPT의 도움도 받겠지만 이들이 최대의 적수가 될 것이다. 이런저런 기업체나 관공서에서도 얘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기업윤리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지적인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기계가 해주니 인간이 편해지는가 했는데 알아서 해주니까 인간의 손에서 일이 떠나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옛날에 끝났고, AIchatGPT가 설치고 있으므로 인간의 뇌는 이제부터 퇴화되지 않을까?

 

  [박완규 시인]

 

  전북 임실 덕치 출생. 2018년 한국아동문학회 동시 신인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한국아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아동문학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누군가 그 길을 걷고 있다』, 동시집 『딱따구리 망치소리』가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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