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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7】 그럴듯한 발인
문학/출판/인문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7】 그럴듯한 발인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사설시조]

 

그럴듯한 발인


김선호

 

 

  물회 좋다 그냥 회 먹자 옥신각신 싸우는디

 

  이 골 저 골 쏘다니던 천방지축 여우란 놈도 마지막은 언덕으로 고개 꺾지 않드나 객지가 아무리 좋아도 고향만은 못한 기라 살기로야 미국 땅이 천국만큼 좋다드만 이민이든 유핵이든 하나같이 앓는 거이 얼룩백이 황소울음 같은 지용 선생 향수벵이라데 아닌 말로 운수 사나워 객사를 당하더라도 생여 타고 고향 찾아 살던 집을 휘휘 돌며 살아생전 못다 한 정을 쏟아붓지 않드나

 

  망망대해 제집인디 거칠 거이 뭐 있겠노 대서양이 싫증 나믄 태펭양을 떠돌다가 그것도 싫다 싶으면 인도양을 누볐을 틴디 하필 고 그물에 걸려 여그까지 잽혀 와선 칼 맞은 몸뚱이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한 많은 이 시상을 하직하는 자린 기라 제 놀던 물에라도 담가 줘야 도리지 싶다 한나절이면 닿을 저쪽 한평생을 기다리며 우리도 철조망 땀시 목만 빼고 안 있드나

 

  대접에 물 붓거레이 소금도 좀 팍팍 녛고!

정전협정 사진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유엔군 수석대표 미국의 윌리엄 해리슨 중장(좌),북한·중국 연합군의 수석대표 남일 대장(최종서명자 연합군 마크 클라크 사령관, 북한군 김일성 사령관, 중국군 펑더화이 사령관은 각각 집무실에서 서명) - 사진 출처 한겨레21

수구초심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는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 향수를 일컫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다. 5대에 걸쳐 제나라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강태공도 죽을 때는 태어난 주나라를 장지로 지목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가수 김상진도 울먹였다. 고향을 그리워함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2023년도 기준 재외동포는 7백만 명을 웃돈다. 아예 살러 떠난 이민자도, 공부하러 간 유학생도 고향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잘 견디기도 하지만, 마약이나 도박 같은 탈선으로 엇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애환을 그린 르포나 뉴스를 접할 때면 가슴이 찡하다.

 

그들보다 더 가슴 아픈 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다. 재외동포야 어찌하면 돌아올 수도 있지만, 그들은 지척인 고향이 만 리보다 멀다. 727일은 일흔두 번째 맞는 정전협정일이다. 난데없는 육이오 3년 만에 남한을 배제한 정전협정이 이뤄졌다. 그때 드리운 철조망은 아직도 실향민의 고향행을 막고 있다.

 

폭우가 끝나면서 폭염의 기세가 사납다. 냉면, 막국수, 콩국수 같은 찬 메뉴가 인기다. 얼음 버석대는 물회 그릇에도 실향의 비애가 꿈틀댄다. 움찔하며 일단 숨을 고른다. 피정복자에게 베푸는 가소로운 은혜일까, 실향의 아픔을 공감하려는 알량한 동정일까. 입안이 깔깔하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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