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23】 김영순의 "가닿음으로"

가닿음으로
-김수오 말사진전에 부쳐
김영순
분명, 홀린 거야
퇴근길 찾는 들녘
낮에는 한의사로 밤에는 사진가로
불빛을 끄고 앉으면 새삼스런 고요 뿐
카메라 시점은 끼어들 명분이 없다
새끼를 낳느라 중산간이 울컥해도
별빛을 그러모으며 숨소리 지켜볼 뿐
흔들, 흔들리다 중심 잡고 일어서면
됐다, 그거면 됐다, 주먹 불끈 쥐어볼 뿐
봄밤은 무슨 일이든 벌어질 봄밤이다
《시조시학》 2025. 여름호
낮에는 침을 들어 환자를 진료하고, 밤이 되면 오름과 제주 들판을 다니며 제주말을 카메라에 담아온 한의사가 있다. 사진작가 김수오의 이야기다.
김영순 시인의 「가닿음으로」는 김수오 말 사진전에 다녀오고 쓴 시인 듯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작가도, 그 작가의 삶을 시로 기록하는 시인도 모두 이 시대의 파수꾼이다.
제주의 중산간, 그곳은 언제나 말(言)이 없다. 오름은 오름대로 숨 고르고, 들판은 들판대로 숨 고른다. 새끼를 품은 생명은 기척으로 계절을 넘긴다. 별빛이 떠오를 무렵, 누군가는 삼각대를 세우고 숨소리를 삼킨다. 끼어들지 않고, 끼어들 수 없어서 김수오 작가가 풍경에 도달한 것은 ‘가닿음’이다.
어느 날 목장을 돌아다니다 새끼를 낳는 말 한 마리를 봤을 것이다. 오랜 산통을 지켜보는 중산간도 걱정돼 함께 울컥한다. 긴 시간 쪼그려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진작가는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봄밤에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했지만, 별빛을 그러모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무게 중심을 잡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고 흔들리다 불끈 쥔 주먹 안에 하루를 쥐는 일이다. 불확실하고 촉촉한 밤의 한복판에서 어쩜 살아있다는 감각일 수도 있겠다. 그저 빛이 머물다 가는 봄밤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하면 된다.
‘됐다, 그거면 됐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트뉴스 전문 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