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48] 한희정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물음—클림트 <키스> 앞에서"
에로티시즘에 대한 물음
—클림트 <키스> 앞에서
한희정
그대 사랑은 무엇으로 재나요?
사랑의 단위는 무게인가요 부피인가요
옷가지 금박에 눌린, 사랑의 증표인가요
진심은 꼭 재어주세요 그 표정은 뭔가요
벼랑 끝 움켜잡은 발부리의 힘을 봐요
서로 꽉 붙들어 있어도 두려움은 뭔가요
짐짓 위선인가요 확증은 필요하겠죠
통점은 돌고 돌아요 애증의 파동인가요
빈가슴 의연해져요 따뜻한 심장 채워요
ㅡ『립스틱 지우는 저녁』(목언예원, 2025)

[해설]
사랑에 대한 의심에서 확신으로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1907〜1908년 무렵에 <키스>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에로틱한 데다 도금하는 기법으로 그려 더욱 유명해졌다. 꽃밭에서 포옹하는 커플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남자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고, 여자는 남자의 볼 키스에 홀린 듯 눈을 감고 있다. 남자의 팔은 여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고 여자의 손은 남자의 어깨에 얹혀 있고 두 사람의 몸이 얽혀 있다.
한희정의 시조 작품은 시적 화자가 화가에게 몇 가지를 질문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첫수에서는 클림트 당신은 사랑을 무엇으로 재느냐고 물어본다. 무게 단위로 재는가요, 부피 단위로 재는가요? 재미있는 질문이다. 사랑이란 것이 심각한가? 가벼운가? 큰가? 작은가? 옷가지를 금박으로 그린 이유는? 사랑의 증표는 화려한 옷? 비싼 옷? 돈이 없어서 선물을 못하면 사랑도 못하는가?
시인의 그림 해석은 사랑의 기쁨이 아니라 사랑의 슬픔 쪽이다. 황홀경이 아니라 두려움 쪽이다. 진심이 아니라 의심이다. 나를 계속 사랑해 줄 거죠? 버리지 않을 거죠? 더 세게 안아줘요. 당신의 이 키스는 진심인가요? 제가 어떻게 하면 확증할 수 있을까요? 여성을 대신하여 그림 속 남자에게 질문 공세를 펴고 있다. 세 번째 수 종장에 가서야 그림 속 여성의 의심은 풀리고 시인의 화가에 대한 질문도 안심의 단계로 들어선다. 다행이다.
최근에 어떤 글에서 이렇게 썼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러브스토리는 다 이상하게도 해피엔딩이 아니다. 『테스』『안나 카레니나』『보봐리 부인』『아들과 연인』『채털리 부인의 사랑』『폭풍의 언덕』『닥터 지바고』『시스터 캐리』『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사랑의 종말』……. 문호들의 소설치고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사랑이 없다.
이 시조는 결말이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람 한 명도 사랑하지 않고 뭘 하겠다는 건가. 에로티시즘의 한글 번역은 ‘저지름’이다.
[한희정 시인]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2005년 《시조21》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굿모닝 강아지풀』『꽃을 줍는 13월』『그래 지금은 사랑이야』, 현대시조 100인 시선집 『도시의 가을 한 잎』 등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