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면 밥을 먹는다"… 남진영 수필 「언니 거기 있지?」가 건네는 울림
치열했던 유년의 몸싸움을 통해 혈육 간의 애증과 본원적 유대감을 포착해 낸 남진영 작가의 수필 「언니 거기 있지?」에 대해 시조시인 효산(曉山) 남순대가 깊이 있는 평설(評說)을 남겼다.
문학적 교유의 장인 ‘문학 아틀리에’를 통해 전해진 이번 평설에서 효산 시인은 이 글을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가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품은 작품”으로 규정했다.
효산 시인은 특히 “전쟁이 끝나면 밥을 먹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라는 문장에 주목하며, “거대한 ‘전쟁’과 지극히 일상적인 ‘밥’의 병치를 통해 갈등의 폭력성을 희화화하면서 동시에 가족적 일상의 강인한 복원력을 압축해 낸 탁월한 장면”이라고 평했다.
이어 레이먼드 카버식 미니멀리즘과 안톤 체호프의 일상 관찰을 언급하며, 슬픔이나 그리움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문, 열쇠, 머리카락, 밥상 같은 사물과 행동이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정서를 빚어낸 구체성과 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남진영 작가의 수필 「언니 거기 있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작품 전문]
언니 거기 있지?
남진영
싸움에는 법칙이 있다. 먼저 머리끄댕이를 잡는 쪽이 이긴다. 상대는 언제나 언니였고, 나는 예외 없이 잡히는 쪽이었다.
"놔라."
"싫은데~"
"야! 놓으라고!"
"뭐? 야? 이게 언니한테 죽고 싶냐?"
협상 결렬. 언니가 억세게 흔들면 나는 시체 전략을 꺼낸다. 저항도 비명도 없이 축 늘어지는 것. 언니 손에서 힘이 빠지는 그 순간, 머리를 빼고 있는 힘껏 어깨를 밀친다.
철퍼덕.
언니가 넘어져 고개를 파묻는다. 어깨가 들썩인다. 통쾌해서 깔깔 웃다가 멈춘다.
"언니… 언니?"
낯선 미안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슬슬 다가가는 순간, 언니가 고개를 번쩍 든다. 눈물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 벌겋게 부은 눈이 나를 정조준한다. 괴물이다.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근다. 곧 열쇠 꾸러미 소리가 들린다.
"열어라."
"못 열어! 때릴 거면서!"
"안 때릴게."
"못 믿어!"
딸깍딸깍. 제발 열쇠가 없기를 빌지만 신은 내 편이 아니다. 찰칵. 문이 열리고 언니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그냥 열어줄걸. 사람은 항상 뒤늦게 현명해진다.
퍽퍽퍽. 언니는 실컷 때리고 후련해하며 도망친다. 나는 울면서 쫓아간다.

희한한 건 그 싸움이 언제 끝났는지 기억에 없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며, 우리는 또 희희낙락 장난을 쳤다. 전쟁이 끝나면 밥을 먹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끔 생각한다. 그 싸움에서 우리는 매번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 여기 있다, 너 거기 있냐고.
지금은 싸움이 없다.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삶이 무거워지는 순간이면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절반은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자매란 사랑과 의리와 미운 정이 조금씩 배합된 종합비타민 같은 사이일지도 모른다. 없으면 찾게 되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닮은 타인.
그래서 안 보이면 찾게 된다. 나 여기 있다고. 언니 거기 있냐고.
효산 시인은 평설을 마무리하며 “머리끄댕이를 잡던 손과 열쇠를 들고 문을 열던 손, 서로를 밀치고 때리던 그 손들이 돌이켜보면 모두 ‘너 거기 있니?’라고 묻던 어린 날의 서툰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며, “결국 이 작품에서 ‘언니 거기 있지?’는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견디는 사람이 던지는 가장 절실한 존재 확인의 물음”이라는 해석을 남겼다.
한편,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서 자매애의 깊이를 길어 올린 남진영 작가의 수필 「언니 거기 있지?」는 월간 『좋은생각』 10월호 지면을 통해서도 소개되어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