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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송석태의 "끝내 닮지 못한 내 아버지"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송석태의 "끝내 닮지 못한 내 아버지"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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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05]

끝내 닮지 못한 내 아버지

 

송석태

 

밭고랑 패인 골 이마에 걸머지고

먹티재 구름 넘길 팔십 평생 수만 번

지게 가득 온갖 야채 삼례장에 펼쳐놓고

구성진 노랫가락 저녁 장이 파할 때쯤

꽁꽁 묶인 청춘 대신 양손 가득 수박 두 통

덜 익은 게 무슨 죄랴 낄낄 웃던 내 아버지.

 

흙 묻은 검은 손이 쩍쩍 말라 터져날 때쯤

마지막 손짓으로 손주 머리 쓰담쓰담

깊이 내쉰 날숨 위에 천사 손길 내려오고

봄 배꽃 향기 따라 여행 가신 내 아버지.

 

봄꽃 향기 아른아른 고향 소식 전해오고

쇠창살 문틈 새로 살짝 누인 빛을 따라

아버지 당신 모습 나를 불러 안아주고

흐르는 눈물 위에 사랑해써 놓으시고

꿈인 듯 현실인 듯 다녀가신 내 아버지.

 

—『새길』(법무부 사회복귀과, 2021년 여름호) 

  

끝내 닮지 못한 내 아버지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아버지와 아들 사이

 

  21세기도 1/4이 지난 지금 삼강오륜을 얘기하면 태곳적 이념을 끌어온다고 비난을 받겠지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말의 뜻을 곰곰 새겨보는 요즘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는 친애(親愛), 즉 친밀하게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의 실상을 살펴보면 혈연지간이 아닌 부부관계보다 더 애매한 관계가 아버지와 자식 관계다. 특히 부자관계다.

 

  안양교도소장의 요청으로 시치료 프로그램 강사로 초청되어 갔을 때였다. 설문 조사를 한 항목 중 그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이라는 게 있었다. 다섯 개의 대답이 지금도 확실히 기억난다. 소와 닭, 나를 버린 분, 남남이다, 다섯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다, 이제야 말문이 트였다라고 쓴 다섯 명이었다. ‘이제야 말문이 트였다고 써낸 수용자는 38, 필명을 식돌이로 썼다. 이들은 범죄자로서 형을 살고 있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 좋았으므로 만약 이들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더라면 여기 와 있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한 이유는 대개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무관심, 아버지의 폭력,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에 따른 헤어짐, 아버지의 외도, 아버지와의 이른 사별,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였다. 수용자들과 몇 달 같이 시 창작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느낀 점은 이들의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대를 물려 자기 아들과의 거리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짧게는 34, 길게는 1020년을 아들과 떨어져 교도소에서 살아가는데 출소해 과연 돈독한 부자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이 시를 쓴 이는 노동으로 이어진 아버지의 생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비록 담장 안과 밖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정이 약해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계시다면 이 시를 읽고 얼마나 감동했을 것인가. 봄 배꽃 향기 따라 여행을 가셨다고 하니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닌지 모르겠다. 3연을 보니 면회를 오신 것이 화자의 꿈속에서인 것 같다. 자식이 옥살이하는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그것보다 더한 불효가 어디 있으랴.

 

  우리 사회는 정치적 안정과 화합, 경제발전, 인구감소, 계층의 분화 등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의 해체, 가정의 붕괴가 그에 못지않게 선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가족 간의 살상이 사흘이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가족이 함께 하는 구청이나 동별 행사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1인 가족의 편리한 삶을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데 가족의 사랑을 강조하면 그것이 과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까? 부자가 함께 등산하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은 왜 없는가.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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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아들사이#이승하의하루에시한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