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평화의 길_제3화 '철갑을 녹이는 평화의 서명"
오마하 비치 전쟁박물관의 마당은 침묵의 전시장이다.

거대하고 차가운 철갑을 두른 채 굳어버린 탱크, 그리고 초록빛 잔디밭 위로 끝없이 자라난 하얀 십자가 나무들. 이곳은 어른들이 서로를 향해 가장 날카로운 불신과 미움의 성벽을 쌓았던 역사의 흉터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육중한 벽인 ‘전쟁’의 잔해 앞에서 어른들은 엄숙하거나, 혹은 여전히 두려워하며 그 단단한 벽을 매만진다. 그러나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 하성이의 나침반은 역사 책의 활자가 아닌 오직 본능적인 영성에 닿아 있다.
아이는 어른들이 ‘살상 무기’라 부르는 웅장한 탱크 바퀴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툭 매만지더니, 그 쇠붙이에 붙은 빛바랜 전쟁의 기록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가리킨다. 그리고 아이의 투명한 눈망울이 나를 향해 묻는다.
“아빠, 여기선 왜 싸웠어?”
이보다 더 깊고 철학적인 질문이 어디 있겠는가.
정복과 이념, 국경이라는 이름으로 지독하게 얽힌 어른들의 복잡한 성벽이, 아이의 순수한 질문 한 마디에 그 벽들이 흩어진다. 아이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적 한계와 비극의 경계를 아무런 편견 없이 넘나들며, 그 서글픈 영혼들을 향해 양팔을 벌려 위로의 몸짓을 건넨다.
이 낮고 순수한 행위예술은 우리의 오래된 차량 ‘푸조5008’ 위에서 마침내 찬란한 평화의 담론으로 피어났다.



하성이의 맑은 눈빛과 마주한 프랑스의 가족들, 그리고 지나가던 푸른 눈의 소년과 세계의 이웃들이 하나둘씩 우리의 22,500km짜리 캔버스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마커를 들고 차체 위에 저마다의 언어로 답을 적기 시작했다.
“Bon Courage(힘내세요!)”, “Vive la Paix!(평화 만세!)”. 철판 위에 빼곡히 새겨지는 서명들은 거창한 정치가들의 조약서보다 단단한 연대의 기록이었다.
어른들이 쌓아 올린 전쟁의 벽을 눕히는 것은 더 큰 철갑이 아니었다. 아이의 순수한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응답하며 맞잡은 세계 시민들의 따뜻한 온기였다. 차체 위에 쓰인 검고 흰 글씨들은, 대륙의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놓아가는 평화의 징검다리다.



우리가 80여년을 쌓은 한반도의 허리, 그 분단의 벽 또한 이 대륙의 세계인들이 보내주는 온기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평화라는 하나의 서사로 묶인 이 거대한 소통의 장 속에서, 하성이가 그리는 ‘하나의 한국’은 이미 대륙의 지평선을 따라 붉고 푸른 맥박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서명들의 무게를 안고, 다시 길을 만든다.
자료 : 정락석 로드메이커 대표 제공
편집: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