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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최수일의 "콘크리트 자궁"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최수일의 "콘크리트 자궁"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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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03]

콘크리트 자궁

 

최수일

 

흙 한 점 없는 콘크리트 벽

갈라진 틈새에서 싹을 틔운 풀씨 하나

 

노르스레한 새싹이 실바람에 파르르 떤다

 

국민학교 마치고

두 형과 함께

일곱 마지기밖에 안 되는 아버지 농사일 거들다

풀씨처럼 바람에 날려

청량리역전 시장통 조그만 양복점에 들러붙었다

 

단추 구멍 끝손질부터

신사복 재단을 할 때까지

이십여 년을

입을 재봉틀로 박고

헝겊 조각으로 눈 가리고,

 

비좁고 누추한 가게와

밤보다 낮이 더 어두운 다락방을 오르내리며

생쥐처럼 살아냈던

오랜 친구 복덕이

 

콘크리트 금 간 틈새를 흙으로 메운다

 

—『감천』(등대지기, 2024)에서

콘크리트 자궁 _ 최수일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장삼이사를 위하여

 

  이 세상에는 돈을 많이 가진 자, 지위가 높은 자, 학덕이 높은 자들이 있다. 독재자도 있고 범죄자도 있다. 이들 가운데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노벨이나 퓰리처, 록펠러 같은 이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자기나 자기 가족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장삼이사(張三李四)나 민초(民草) 혹은 백성(百姓)의 역할이나 가치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시에 나오는 인물은 농사꾼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상경하여 청량리역 근처에서 양복점을 연다. 화자는 재단사가 된 자기 친구 복덕이의 한 생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 시의 제4, 5연에서 화자는 복덕이의 생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짧게 줄여 묘사한다. 그의 생을 화자는 흙 한 점 없는 콘크리트 벽의 갈라진 틈새에서 싹을 틔운 풀씨 하나가 노르스레한 새싹이 되었다고 한다.

 

  제목인 콘크리트 자궁콘크리트 금 간 틈새를 흙으로 메운다는 마지막 연과 연결된다. 금 간 그 틈에 흙이 있었기 때문에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금 간 틈새를 흙으로 메우는 일을 이제는 화자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콘크리트가 품고 있는 자궁은 바로 그 틈새이다. 그 끈질긴 생명력, 생존력, 생활력을 가진 복덕이란 친구야말로 이 땅의 희망이 아닐까. 이 땅을 지켜온 이들은 바로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던 장삼이사였다. 백성이었다.

 

  고향이 나랑 같은 김천의 선배님이 낸 시집 제목이 김천시 외곽을 흐르는 시냇물인 감천(甘川)’이다. 내 유년기와 성장기의 온갖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에 가고 싶다.

 

  [최수일 시인]

 

  경북 김천 출생. 2019년 《문학비평》 신인상, 2021년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당선. 18회 풀잎문학상, 3회 한국힐링문학상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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