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68] 김강호의 “니힐리스트”
니힐리스트
김강호
긴 문장 움켜쥐고
수만리 달려와서
한 소절도 읽지 못하고 쓰러지는 파도의 일생
저렇게 생은 끝났다
포말만 남겨둔 채

이 시조 「니힐리스트」는 짧은 형식 안에 인간 존재의 허무와 언어의 한계를 압축해 보았다. 제목인 ‘니힐리스트’는 단순히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끝까지 탐색했으나 결국 그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를 암시한다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파도라는 자연물을 통해 인간의 생애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우선 초장 “긴 문장 움켜쥐고”는 강렬하게 표현했다. 여기서 긴 문장’은 실제 글 한 줄이 아니라 인간이 평생 붙들고 살아가는 꿈, 신념, 사상, 혹은 삶의 의미 전체를 가리킨다.‘움켜쥐고’라는 표현은 그것을 단순히 지니는 것이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한 태도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완성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의미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욕망이다.
이어지는“수만리 달려와서”는 파도의 이동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긴 생애의 여정이다.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가 숨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파도가 먼 바다에서 육지까지 밀려오는 자연 현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끝없는 시간의 항해를 뜻한다.‘수만리’라는 과장된 거리감은 삶이 얼마나 길고 고단한 탐색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며,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모든 노력과 방황의 함축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한 소절도 읽지 못하고 쓰러지는 파도의 일생”에 있다. 여기서 파도는 명백한 인간 존재다. 특히‘읽지 못하고’라는 표현에 큰 의미를 두었다. 파도는‘긴 문장’을 움켜쥐고 달려왔지만 정작 그 문장의“한 소절도 읽지 못한다.” 이는 인간이 평생 진리를 추구하지만 끝내 세계의 본질이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삶은 거대한 텍스트와 같으나 우리는 그 일부조차 충분히 해독하지 못한 채 생을 마친다.
또한 이 대목, 파도가 ‘문장’을 움켜쥐고, ‘달려오고’, ‘읽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표현은 인간의 행동과 의식을 자연물에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의 보편성이다. 파도의 운명이 곧 인간의 운명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바다조차 결국 부서지는 파도를 품고 있듯, 우주 또한 유한한 인간 존재를 품고 있다는 인식으로 놓았다.
다음 종장 “저렇게 생은 끝났다”는 극도로 담담한 어조를 통해 감탄도 통곡도 없이 ‘저렇게’라고 말하는 태도는 오히려 더 깊은 허무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삶의 장대한 여정이 결국 한순간의 붕괴로 귀결된다는 객관적 응시다. 이는 니힐리즘적 세계관의 핵심인 ‘의미를 향한 모든 운동도 결국 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보았다.
마지막 “포말만 남겨둔 채”에서 ‘포말’은 파도가 부서진 뒤 잠시 남는 하얀 거품으로,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종결이다. 포말은 찰나적이며 곧 사라진다. 이는 인간이 죽은 뒤 남기는 기억, 흔적, 명성, 언어, 예술 등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결국 「니힐리스트」는 파도의 일생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써 보았다. ‘긴 문장’은 의미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수만리’는 삶의 긴 여정을, ‘읽지 못함’은 인식의 한계를, ‘파도’는 유한한 존재를, ‘포말’은 소멸 이후의 덧없는 흔적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평생 움켜쥐고 달려온 그 ‘긴 문장’을 과연 끝내 읽을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 또한 포말 한 줌만 남긴 채 사라지는 존재인가.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