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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해설] 황서영의 "배시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 해설] 황서영의 "배시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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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35]

 

배시시

 

황서영

 

엘리베이터 안

하필

윗집 할아버지랑

단 둘

 

몇 번을 인사해도

할아버지, 앞만 봤었지.

“나도 모르는 척할래.”

내 마음속은

와글와글

 

숫자 버튼 다 읽고

거울 비친 내 얼굴

다 뜯어봤는데

아직도 올라가는 중

우리 집은 저 위

할아버지 집은 더 위

 

조용한 공간은 어색해

몸이 배배 꼬이지

내 마음도 뱅글뱅글 빙글빙글

 

“할아버지, 연세 어떻게 되세요?”

목청 높여

예의 차린 내 정중함

 

“뭐라고? 내 나이?”

할아버지, 소리쳤지.

“아흔여덟! 부끄럽게 뭘 물어?”

할아버지, 배시시 웃었지.

 

난 말이지. 깜짝 놀랐어.

맞나? 내가 알던 그 할아버지 맞나?

꽉 막혔던 내 마음

뻥 뚫렸나 봐

나도 따라서 배시시

 

―『시와 소금』(2025년 여름호) 

7살 어린이와 노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웃는 모습을 그려줘요
꼬마와 할아버지의 대화 [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꼬마와 할아버지의 대화

 

  2025년 현재 주택보다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지방의 인구가 줄고 있다는 언론 보도와는 상관없이 지방에도 고층아파트가 여기저기 삐죽삐죽하게, 빼곡하게 세워지고 있다. 이 동시는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마주치는 꼬마와 할아버지 사이에 벌어진 일을 극화한 것이다. 목격담이든 상상력의 산물이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잘못했다. 같은 동(棟)에 사는 아이가 몇 번 인사를 해도 안 받아준 것은. 98세니까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꼬마가 좁은 공간에 할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이 어색하여 마음이 뱅글뱅글 빙글빙글, 배배 꼬이자 “할아버지, 연세 어떻게 되세요?” 하고 여쭤보았다. ‘춘추’는 몰랐을 테고, ‘나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 그래도 기특하다. 할아버지가 꼬마의 말을 알아들었다. “뭐라고? 내 나이?”

 

  할아버지가 “아흔여덟! 부끄럽게 뭘 물어?” 하고 외치고 나서 배시시 웃은 것이 재미있다. ‘배시시’란 입이 약간 벌어지며 소리 없이 살짝 웃는 모양인데 꼬마 녀석이 당돌하게 자기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우습기도 했던 것이리라. 할아버지가 대답도 해주시고 웃기까지 하니 그간 할아버지한테 맺혀 있던 아이의 마음이 스르르 풀렸고, 그래서 “나도 따라서 배시시” 웃으면서 동시가 끝난다.

 

  이른바 ‘예절교육’이 빵점(?)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아이와 할아버지와의 교감을 소재로 한 이 동시는 유머도 있고 구태의연하지 않아서 좋다. 동네에서 인사성이 바른 아이를 보면 그 부모님에게 존경심이 간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황서영 시인]

 

  건국대학교 대학원 동화미디어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논문으로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세계-여성학적 관점으로」가 있다. 현재 박사과정 수료. 2006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동시 「별 하나」가 당선되었으며, 2008년 제6회 푸른문학상 새로운작가상 중편소설 공모에서 「조태백 탈출 사건」이 당선되었다. 동시집으로 『네 머릿속엔 뭐가 들었니?』『분노잼 만들기』와 청소년소설 『복권반찬청춘일상』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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