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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김세영의 "우주의 여자"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김세영의 "우주의 여자"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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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26]

우주의 여자

 

김세영

 

 

은하의 고독한 불씨로 던져져

팽창하는 자유의 횃불

 

암흑에너지를 품고 사는

중년의 독신녀

 

불꽃의 절반을 태우며

갱년기에 접어든 여왕

 

적색 거성, 거대한 적혈구의 용광로

심장이 불꽃을 뿜는다

 

그녀를 연모하는 뭇 행성들

홍염紅焰의 치맛자락에 휩싸인다

 

별똥별들,

한여름 밤의 불나방처럼

열락의 분신을 한다

 

늪처럼 깊은 자궁의 내막 속

오랜 욕망에 지친 흰 뼈를 묻으려는

백색 왜성들의 수억 마리의 꿈들,

 

모천처럼 찾아가는 블랙홀이

그녀의 단전 속에 있음이다

 

때로는 여왕벌처럼 외롭고 슬플 때

울먹임의 파도가 은하의 유역에 범람한다

쓰나미에 떠내려간 유성들이

궤도를 잃은 우주의 유랑자가 된다

 

훗날, 마지막 몸 보시 다비

초신성超新星의 광채로

우주의 등대가 되려는 그녀!

 

떠도는 혼의 유성들을 초혼가로 부른다

우주의 어머니, 용광로 가슴으로

얼음 운석이 된 심장들을 품어준다

 

새로운 별의 마그마로 채워주려는 것이다.

 

—『별빛의 화법』(상징학연구소, 2025)

   

떠도는 혼의 유성들을 초혼가로 부른다 우주의 어머니, 용광로 가슴으로 얼음 운석이 된 심장들을 품어준다 새로운 별의 마그마로 채워주려는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그려줘요
우주의 여자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여성은 거룩하고 위대하다

 

  현직 의사인 김세영 시인이 이렇게 엄청난 우주적 상상력을 지니고 있을 줄 몰랐다. 그러니까 이 시는 여성에 대한 엄청난 헌사다. 여성은 왜 위대한가? 생명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체는 하나의 우주이기에 여성은 ‘우주의 여자’인 것이다.

 

  제1연에는 “팽창하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을 연상하게 되지만, ‘팽창하는(expanding)’이라는 단어는 우주의 팽창을 연상케 한다.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설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제2연, “암흑에너지를 품고 사는/ 중년의 독신녀”라고 여성을 구체화하였다. 블랙홀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데 그녀는 과거에 무진장 고혹적이었지만 이제는 “불꽃의 절반을 태우며/ 갱년기에 접어든 여왕”이라서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아직도 미모가 여전해 “적색 거성, 거대한 적혈구의 용광로/ 심장이 불꽃을 뿜”고, “그녀를 연모하는 뭇 행성들/ 홍염의 치맛자락에 휩싸인다”고. 아아, 얼마나 풍만하고 고혹적이었으면.

 

  흡사 여왕벌이 뭇 벌을 거느리고 살아가듯이 수벌은 여왕과의 결합을 꿈꾼다. 여왕개미도 그렇고, 수컷들이 슬슬 긴다. 수컷은 수억 마리의 정자를 “늪처럼 깊은 자궁의 내막 속”으로 뿜고 싶어한다. “오랜 욕망에 지친 흰 뼈를 묻으려는/ 백색 왜성들의 수억 마리의 꿈들”은 정자다. 결합이 없으면 회임도 없고 탄생도 없다. 시인은 그녀,  ‘우주의 여자’가 “초신성의 광채로/ 우주의 등대가 되려” 한다고 보았다. 여성에 대한 엄청난 숭배요 예찬이다.

 

  세상은 이제 모계사회로 돌아갈 것이라고 시인이 예언하는 것만 같다. 여성은 우주의 탄생과 생성과 팽창과 무관하지 않다. 大地母神이 아니라 宇宙母神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시인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우주의 어머니, 용광로 가슴으로/ 얼음 운석이 된 심장들”을 품어주므로 여성은 거룩하고 위대하다.

 

  [김세영 시인]

 

  부산 출생. 2007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으로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물구나무서다』『하늘거미집』이 있다. 서정시선집 『버드나무의 눈빛』, 디카시집 『눈과 심장』, 시론집 『줌 인 앤 아웃』, 한불번역시집 『새로운 약속』을 펴냈다.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 졸업, 성균관의대 외래교수.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계간 《시담》 편집인, 시산맥시회 고문, 문학의학학회 이사, 국제PEN 한국본부 인권위원을 역임했다. 제9회 미네르바 작품상, 한국문인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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