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3】 짐의 무게
짐의 무게
김선호
요즘 같은 시월에 짐 질 일이 뭐가 있노
연탄 짐 걸머지고 달동네를 오르드나 물 초롱 양어깨 달고 휘청휘청 춤을 추드나 집채만 한 나뭇단 얹어 산등성일 넘드나 단내 끓던 골목은 재개발로 잦아들고 택배차 드나들며 생필품 실어나르고 지게차 한번 납시면 쇳덩이도 떨지 않드나 도시만 우찌 그렇겠노 시골도 매한가지라 리어카는 저승 갔고 겡운기는 뒷방 신세 온 들판 싸돌아다니는 트랙터가 대장이레이
근데 말이라 그땐 그래도 지는 만큼은 벌었는 기라 한 짐 지면 한 짐 대가 두 짐 지면 두 짐어치 짐 따로 벌이 따로인 요즘과는 딴판 인기라 눈에 띄는 짐만이 우찌 또 무겁겠노 믿는 도끼 발등 찍듯 이래저래 사기당하고 다시는 안 속는다는 다짐도 참 무겁고 앞으로 뛰어갈 판에 뒷걸음치는 살림살이나 보듬어도 바쁜디 쌈질하는 저 동네나 먹구름 낄 것만 같은 이런 조짐도 묵직하고
젤로는 우격다짐이제, 말문이 칵 막히니께…

흑백필름 속에나 있지만, 지게는 유용한 운송 수단이었다. 켜켜이 쌓인 연탄도, 순서를 기다리며 늘어선 물 초롱도 모두 지게로 날랐다. 역전이나 시장에는 짐꾼들의 장사진이 장관이었다. 나무가 주 연료인 농촌은 지게가 필수다. 유목민이 말타기부터 배우듯 아이들은 크면서 지게 균형 잡는 법을 배웠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로 시작하는 정철의 시조처럼 지게질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영국의 대문호 펄벅이 경주에서 마주친 지게 일화는 유명하다. 소달구지에 실으면 될 볏가리를 굳이 따로 지고 가는 농부를 의아해하다가, 소가 힘들까 봐 나눈다는 설명을 듣고서 깜짝 놀란다. 한국의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알겠다고, 볏가리를 나눠 진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감탄했다.
그런 지게가 사라진 오늘날 다른 짐들이 우리를 억누른다. 조금만 맘을 놓아도 당하는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가 판친다. 다시는 속지 않겠노라는 다짐, 그 한숨 섞인 다짐들이 짐처럼 무겁다. 제멋대로인 미국 우선주의나 조마조마한 중동 같은 나라 밖도, 자나 깨나 치고받는 정치판도 왠지 기분 나쁘게 묵직한 조짐이다.
더 걱정할 짐은 우격다짐이다. 다수라는 힘으로 밀어붙일지도 모를, 우격다짐이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이다. 그런 짐은 얼른 벗어야 한다. 아니 아예 지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무거워도 한 짐 잔뜩 지고 싶은 푸짐, 그런 날이 오면 정말 좋겠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