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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세월 - 김영희
문학/출판/인문

[김영희의 수필 향기] 세월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밤. 해도 일찍 져서 더욱 캄캄한 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비친 아직은 어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잊은 무표정한 얼굴. 
 

집으로 가는 버스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비친 아직은 어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깊은 슬픔의 늪에 빠져 있는 그녀를 만나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 올랐다. 정작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목구멍에서 맴돌다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나는 그냥 그렇게 돌아서서 왔다. 

    

    그녀와 나는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늘 있었다. 3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공부를 곧잘 해서 우리 반 반장을 맡았다. 말수가 적었던 나는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냈을 뿐, 쉬는 시간에 특별히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그녀와 서로 데면데면하게 바라보는 관계로 지냈다. 뿔테 안경을 끼고 항상 웃고 있는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은 그녀가 성격 좋은 소녀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차분하면서 통솔력도 있고 원만하여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녀에게서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종례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을 뵈러 교무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앞에는 우리 반 반장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반장에게 "수업료를 빨리 가져와라."하고 조금 큰 소리로 말했고,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나도 등록금을 좀 늦게 내는 편이어서 반장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교무회의 때마다  각 반에서 '등록금을 안 낸 학생들의 인원 비교 자료'가 공개되고, 선생님은 등록금을 빨리 내도록 재촉하라는 윗분의 말씀이 여러 번 있어서 무척 난감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몇 번 더 "등록금을 빨리 가져와라."하고 말했고, 나는 그곳에 있는 것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무척 당황스러웠다. 반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무실을 나갔다. 그 자리를 피할 새도 없이 나는 다 보고 말았다. 선생님과 반장이 어린 내 눈에 애처로워 보였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부터 반장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다. 주소를 적어서 반장 네 집을 찾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오금동으로 가서 주소를 보이며 반장네 집을 찾아다녔다. 어둑해져서야 반장이 사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작은 동네라서 참 다행이었다. 그때는 오금동이 작은 동네였다. 

 

    갑작스럽게 만난 반장과 나는 잠시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랐다. 그때 반장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온 몸은 굳어버렸다. 아무것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반장의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또 얼마나 편찮으셨을까? 반장의 복잡했을 마음과 그 슬픔이 헤아려졌다. 나를 보고 계면쩍게 웃고 있는 반장의 얼굴에 미안함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렇게 반장을 잠시 만나고 나는 바로 뒤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될, 어머니를 잃은 그녀의 깊은 슬픔이 내 가슴에도 그대로 슬픔으로 박혔다. 신발에 무겁게 들러붙는 진흙탕 같은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어 나왔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니 큰길이 나오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찾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잘 지내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가난한 것은 네 죄가 아니야. 그때는 우리 모두 가난했고 또 우리 모두 잘 견뎌왔지. 가난 때문에 고개 숙이는 일이 더는 없었기를. 

   

   어쩌다 보니 오금동과 가까운 곳에서 30년을 살아왔다. 그녀는 지금도 오금동에 살고 있을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안부가 궁금하다. 세월 너머에 그 모습은 평온하고 사나운 바람이 그녀 곁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씩씩하게 잘 살아라, 친구야!

 

- 김영희의 '세월' 중에서

세월 너머에 그 모습은 평온하고 사나운 바람이 그녀 곁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류우강 기자] 

  [수필 읽기]

 

    국민 대부분이 어려웠던 시기. 등록금을 내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많이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부모님께 차마 등록금 얘기를 하지 못한 친구는, 중학교 3학년 차가운 겨울 끝자락에 결국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에게서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신과 같다. 아이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유일한 존재가 부모이다. 특히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거친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과 같은 분이다. 

 

    부모 중에 어느 한 분이 돌아가시면 그 집안은 폭풍우를 만나는 것과 같은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된다. 두 분 중에 어느 한 분이 안 계시게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하시던 일을, 남은 한 분이 두 분의 역할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다 보면 아이를 온전하게 길러내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학교, 이웃이 모두 힘을 합쳐 교육하고 양육하며 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정이 아이를 돌보기 어려울 때 사회가 나서서 그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부재로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20세가 되면 보호 종료가 되어, 성인이 되어 자립할 수 있다는 '자립 청년'이 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립수당'과 '자립정착금', 주거와 의료, 교육비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이 있다고 한다. 나이 20살이 아직 어른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나이로 정부에서 주는 적은 돈을 가지고 그들은 사회로 나와야 한다. 그 돈으로 당장 들어가서 살 집을 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지만 조금 더 따뜻한 시선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여러 단체에서 기부 받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행복한 아이들이 사는 행복한 가정이 모여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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