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2] 전윤호의 "애완동물"
애완동물
전윤호
시골에서는 개를 키운다
집이나 밭에 목줄로 묶고
평생 경비를 서게 한다
밤새 짖어대고
산책은 없다
고양이를 키우는 가게도 있다
쥐를 잡으니 밥도 준다
새끼를 낳으면 귀찮다 한다
가난한 나도 애완동물은 있다
슬픔이었다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내 기분을 먹고
집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내 가슴에 붙어 잤다
놈이 사라진 건
내가 늙었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이 사라지자 침묵이 찾아와
두 번째 애완동물이 되었다
침묵은 눈치가 빨라서
먼저 나대지 않는다
우리는 종일 붙어 있지만
불편하지 않다
저녁놀이 지는 창을 바라보며
우리는 불을 켜지 않는다
밤도 제법 잘 어울리는 집이다
가끔 의심도 한다
혹 내가 애완동물이 아니었을까
진짜 주인은 머리 위에서
나를 보고 웃는 건 아닐까
그러나 덕분에
나는 외롭진 않다
—『애완용 고독』(달아실출판사, 2024)

[해설]
인간 조건—슬픔과 외로움
이 시의 반전은 “가난한 나도 애완동물은 있다/ 슬픔이었다”라는 제3연의 1, 2행이다. 예전에는 동물의 새끼를 분양받아 키웠는데 요즘엔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동물 병원이나 동물 용품 가게에서 사온다. 유기견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키므로 상대적으로 싸다.
시인은 애완동물을 사서 데리고 오는데, 슬픔은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고 한다. 우울증인가? ‘슬픔’의 의인화가 재미있다. 슬픔은 애완동물과 좀 다르긴 하다. 그는 “사료를 주지 않아도 내 기분을 먹고/ 집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내 가슴에 붙어 잤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늙었다고 슬픔이 사라진다니? 기막히게 특출한 상상력이다.
슬픔이 사라지자 침묵이 찾아와 화자의 두 번째 애완동물이 된다. 침묵이란 애완동물은 눈치가 빨라서 먼저 나대지 않는다고 한다. 이윽고 화자가 나 자신을 ‘진짜 주인’의 애완동물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진짜 주인이 내 머리 위에서 웃고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역설(逆說) 같기도 하고 억설(臆說) 같기도 하다.
현대인은 대개 근원적인 고독이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소통이 점점 안 되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키우며 위안 삼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귀가하면 식구는 반가워하지 않는데 강아지가 폴짝폴짝 뛰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사람의 고독을 잘 달래주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이제 개의 위치는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향상되었다. 매사에 시큰둥한 아내와 소통이 아예 안 되는 자식과 완전히 다른 존재다. 안을 수 있다. 어루만질 수 있다. 뽀뽀하는 경우도 있다. 산책을 같이 하고 동고동락한다.
달아실에서 작년 4월 19일에 펴낸 이 시집에서 전윤호 시인은 산문 1편과 시 1편과 유명한 화가의 그림 한 장을 연결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묶는 무척 색다른 작업을 하였다. 출판사에서는 우화집으로 간주했는데 산문을 우화로 본 것이다. 이 시와 묶음을 이룬 그림은 장프랑수아 밀레의 <여자와 아이, 침묵>(1855)이다. 어디서 이런 그림을 구했는지 신기하였다. 27장 그림이 다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전윤호 시인]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선』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순수의 시대』『연애소설』『늦은 인사』『봄날의 서재』『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사랑의 환율』 등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