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예술의 이름으로 벌어진 권력 투쟁: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의 민낯
2025년 6월, 한국미술협회는 또 한 번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제25대 이사장 선거가 법원으로부터 무효 판결을 받은 지 2년, 재선거를 앞두고도 협회는 여전히 혼란과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술을 위한 조직이 어쩌다 권력과 이권의 상징이 되었을까.

선거 무효, 그리고 3년의 법정 투쟁
2021년 1월 16일,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 치러진 제25대 이사장 선거는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총회 정족수 미달, 위임장 위조 의혹, 전자투표 시스템의 불투명성 등 각종 문제가 제기되었고, 결국 허필호·양성모 후보가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3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2024년 2월, 법원은 선거를 무효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협회 운영 전반에 대한 신뢰 붕괴를 의미했다. 이후 협회는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잇따른 사임과 내부 갈등으로 사실상 무주공산 상태에 빠졌고, 주요 사업은 중단되거나 축소되었다.
과열된 선거, 이권의 그림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직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 정부 지원금 배분, 심사위원 위촉 등 막강한 권한이 뒤따른다. 이로 인해 선거는 점차 과열되었고, 일부 후보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선거 비용을 지출하며 회비 대납, 지지자 동원 등의 관행이 만연했다.
한 중견 작가는 “마치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했다”고 회고한다. “전세버스로 지지자를 동원하고, 회식과 접대가 오갔다. 예술인 단체의 선거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고령화와 세대 단절
협회 이사 후보자의 75% 이상이 60대 이상으로, 젊은 작가들의 참여는 극히 저조하다. 30대 작가 송문화(가명)는 “협회는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으로 인식된다”며 “젊은 작가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세대 단절은 단순한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협회의 운영 방식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시대, 글로벌 미술 시장의 변화 속에서 협회는 여전히 20세기적 방식에 머물러 있다.
선거 관리의 불투명성과 제도적 허점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는 외부 감시 없이 내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실제로 재검표 요청이나 포렌식 요구가 묵살되었다는 증언도 있다.
또한, 정관상 총회 정족수는 재적 대의원의 과반수 이상이어야 하지만, 2021년 선거 당시 현장 참석자는 41명에 불과했고, 위임장 역시 서면이 아닌 문자메시지로 대체되었다는 점에서 법원은 선거를 무효로 판단했다.
2025년 재선거, 희망의 불씨인가 또 다른 혼란인가
오는 6월 28일 치러질 재선거에는 양성모, 이병국, 정태영, 허필호 후보가 출마했다. 각 후보는 개혁과 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 논란, 후보 등록 거부 등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예비후보였던 황제성 씨는 선관위의 등록 거부에 대해 법적 대응 중이며, 선거의 폐쇄성과 불공정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해외 예술단체와의 비교: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미국의 CAA(College Art Association)는 이사회 구성 시 성별, 인종, 세대, 전공 분야의 다양성을 고려하며, 선거는 온라인으로 투명하게 진행된다. 영국의 왕립예술아카데미는 동료 예술가 추천제를 통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미술협회는 여전히 폐쇄적 구조와 권위주의적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지 제도적 차이만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예술의 이름으로 돌아가야 할 때
한국미술협회의 위기는 단순한 선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 단체가 권력화되고,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릴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이사장이 되느냐가 아니라, 예술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협회는 이제라도 정관을 개정하고, 외부 감시를 도입하며, 젊은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미술협회는 더 이상 예술가들의 공동체가 아닌,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