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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0] 김성민의 "엄마 생각"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0] 김성민의 "엄마 생각"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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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

 

김성민

 

쫓기듯 고향을 떠날 때

마음속의 흙 한 줌 고이 얹어 드린 어머니

, 어머니를 생각하면

깊은 밤 뜨개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넘어져 우는 자식에겐

그리도 엄하시던 당신이건만

이웃집 창가의 화분 하나에도

그리 마음 쓰시던 어머니.

 

생각하면 모란봉 기슭의 개나리가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세월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섭니다, 손수 지으신 모시 적삼 차림으로

대동강 기슭에서 언제나 웃으십니다.

 

타향 아닌 타향에서

때 없이 불러 보는 어머니

, 어머니를 생각하면

속눈썹 가지런한 눈시울을 좁히시며

오늘도 미소하는 당신입니다.

 

―『병사의 자서전: 시가 있는 이야기』(북앤피플, 2025)

 

엄마 생각 _ 김성민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자유로운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작가가 12일에 별세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향년 63,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뇌종양과 폐암이 데려갔다. 그는 별칭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1세대 탈북민 북한인권운동가이고 또 하나는 북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 한참 전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내 강의를 들었던 제자였다. 시가 참으로 엉성해서 꾸지람을 많이 했지 탈북민이라고 하여 칭찬을 하지는 않았다. 근작들을 보니 실력이 거의 괄목상대할 경지에 이르러 있어 더욱 애통하다.

 

  이 시는 본인의 이야기이면서 상당수 탈북민의 심정을 대신해 노래한 것이다. 35,000명이 넘는 탈북민 대다수가 이산가족의 일원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북한에 둔 채 왔기 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세월을 보낸다. “쫓기듯 고향을 떠날 때/ 마음속의 흙 한 줌 고이 얹어 드린 어머니라는 구절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탈북민이 어디 한둘이랴. “타향 아닌 타향에서/ 때 없이 불러 보는 어머니라는 구절에 이르면 눈물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이다.

 

  김성민 작가는 1962년 자강도 희천 출신으로, 김형직사범대 어문학부를 졸업하고 북한군 제262군부대에서 예술선전대 대위로 복무하다 1995년에 탈북, 19992월 한국에 입국했다. 중국 공안에게 들켜 북송되는 과정에서 열차 안에서 피가 튀는 육탄전을 벌였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리는 열차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렸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들려주었다.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대북 인터넷방송 자유북한방송을 창립해 대표로 활동했으며, 처음엔 인터넷방송으로 시작하다 200512월 대북 단파방송으로 바꿨다.

 

  대학원 졸업 후 20074월에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지난 6월엔 자전적 시집 『병사의 자서전』을 펴냈다. 2004년부터는 수잰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와 함께 매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북한자유주간행사를 공동 개최하기도 했고, 각종 북한 인권 관련 국제 행사에 참석해 주민들의 인권 실상을 널리 알렸다. 20233월엔 통일부 북한인권증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7월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 때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탈북민으로 국민훈장을 받은 첫 사례로, 탈북민 정착 지원 공로를 인정받았다. 아래의 시는 마치 유언 같다. 김성민 석사! 부디, 자유로운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다름 아닌 내것임에도

날 때부터 우리에게 없었던 그것

시장통의 물건이 아니면서도

우리의 부모들이 빼앗긴 그것

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

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우리의 맹세」 전문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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