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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9] 함순례의 "염소"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9] 함순례의 "염소"

이승하 시인
입력
[시 해설]

염소

 

함순례

 

산사태에 묻혔다가 살아나온 염소

온몸에 진흙 뒤집어쓴 채 눈도 못 뜨고 서 있다

 

텃논 물꼬 본다고 큰물에 휩쓸렸다가

집채만 한 나뭇등걸 붙잡고 살아오신 염소

 

물비린내 범람하는 들판을 바라보며

울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아버지

 

—『구석으로부터』(애지, 2024)

 

아버지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살아나신 아버지

 

   큰비가 올 예정이다. 이미 경남 산청, 충남 부여, 전라 광주 등 남부지방에 비 피해가 엄청났는데 또다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올 예정이다. 올해 대한민국 기상(氣象)이 왜 이 모양인가. 봄에 가뭄이 심해지자 산불이 곳곳에서 크게 번져 그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7월에는 한 달에 22일인가 23일인가가 열대야 현상을 보여 사람들을 프라이팬 위에다 올려놓고 들볶더니 8월에는 큰 구름 덩어리가 한반도의 남쪽을 노려보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수난의 연속이므로 북한 주민들도 지금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특히나 주체농법이라고 하여 산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나무들을 베어내 큰비가 안 와도 비 피해가 크다.

 

  이 시의 제1연에 등장하는 염소는 비로 말미암은 산사태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녀석이다. 진흙을 잘 씻기면 풀 뜯어 먹고 잘 살아갈 것이다. 지금은 눈도 못 뜨고 있으니 그 모습이 애처롭다. 착하게 생겼고 착한 염소인데.

 

  제2연에 등장하는 염소는 염소 같은 아버지다. 집채만 한 나뭇등걸이 없었더라면 큰물에 휩쓸려 돌아가셨을 것이다. 나뭇등걸을 붙잡고 살아난 아버지는 이미 범람하고 만 들판, 즉 물에 잠긴 논과 밭을 바라보며 울지도 못하고 떨고 있다. 몸도 춥지만 한 해 농사 다 망친 데서 오는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 비 피해가 심각한 수해로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를 골라보았다. 홍수가 끝나면 어떤 해에는 괴상한 이름의 태풍이 또 한반도 남쪽 여기저기를 휩쓸어 농민들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게 하였다. 올해는 모든 태풍이 제주도 남단에서 세력이 꺾여 일본 쪽으로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물론 일본에 당도하기 전에 세력이 약해지면 좋겠다.

 

  지구온난화는 멈춰지지 않고 있고 전 세계가 그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아버지는 보은에서 태어난 시인이 어렸을 때 본 아버지일 수도 있겠고 이웃집 아저씨일 수도 있겠다. 염소와 염소 같은 아버지의 대비를 통해 함순례 시인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이미지의 시를 썼다.

 

  [함순례 시인]

 

  196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1993년 《시와사회》로 등단해 시집 『뜨거운 발』『혹시나』『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울컥』『구석으로부터』를 펴냈다. 한남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충남시인협회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작은 詩앗 채송화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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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사인#함순례시인#시해설#좋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