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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이승하의 "집으로 가는 길"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이승하의 "집으로 가는 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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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27]

집으로 가는 길

 

이승하

 

민첩하게 사주경계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있었다

천안함 총원 104명 중 29명이 야간 당직자

다 자기 근무처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 하는 굉음과 함께 선체가 두 동강 났을 때

그들은 몰랐다 소리의 진원지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운명을

 

46명은 끝내 집으로 가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았는데

휴가 날짜를 손에 꼽고 있었는데

제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붕어빵이건 국화빵이건

맥주 두 캔이건 치킨 한 마리건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다 얼굴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식구가 천사다

 

민통선 저 너머 철조망 저 너머에

집을 두고 온 이산가족은

길 막혀 갈 수 없으리

 

어머니 생신인데도

아버지 기일인데도

뱃길 막혀 갈 수 없으리

 

―월간 『해군』(해군본부 정훈실 문화홍보과, 2024.5)

"맥주 두 캔이건 치킨 한 마리건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다" - 이승하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그들은 집으로 가지 못했다


  어제는 이 나라 방방곡곡에 화마가 덮치는 바람에 산불과 관련 있는 시를 소개하느라 이 시를 하루 늦게 올린다. 어제는 천안함 피격사건 15주년이 되는 해였다. 46명의 장병이 어뢰에 맞아 배가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집으로 가지 못했다.

 

  2010326일 밤 922분이었다.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해군의 초계함 14번함인 천안함이 해상 초계임무 수행 도중 조선인민군 해군의 잠수정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하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었다. 520일 국방부와 정부는 침몰 당시 북한과 관계없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민군합동조사단 및 국제조사단의 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북한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았음을 확인하고 북한을 규탄하였다. 북한은 물론 이를 부인하였다.

 

  작년에 해군본부 정훈실 문화홍보과에서 『해군』지에 실을 시를 1편 청탁한다면서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 써달라고 했다. 해군 장병들이 독자인 잡지라 아주 쉽게 써 보냈다. 하고많은 시인 중에 내게 청탁을 한 이유가 있었다. 2018년 가을에 연구년을 받아 해군사관생도들의 세계일주 순항훈련에 지원, 충무공이순신호에 동승하였다. 미국 하와이, 멕시코 아카풀코, 미국의 볼티모어까지 가서 하선, 뉴욕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였다. 원래는 프랑스 셰르부르에서 하선해 파리로 갈 계획이었는데 급히 귀국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40일 동안 해군사관생도, 승조원, 편성요원 등과 배에서 동고동락하였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을 지키는 해군의 고생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큰 구축함이었지만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였다. 해상 근무의 고달픔은 지상 근무와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이 젊은이들 덕분에 내가 편히 잠잘 수 있었구나, 뼈저리게 느끼고 왔다. 그렇다, 해군은 때로는 태풍과 기상이변과 싸워야 하고 상시 외로움과 그리움에 시달려야 한다.

 

  해군생도들은 근 6개월 동안 열 곳이 넘는 항구에 들르게 된다. 선상훈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군인과 교민들을 만나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한다. 6개월 동안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즉 향수병에 걸려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천안함 피격,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때 전사한 장병들은 집에 갈 수 없다. 한국전쟁 때의 사망자도 마찬가지고 이산가족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전력을 증강해야 한다. 천안함 피격 때 전사한 46명 장병의 넋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도 우리를 넘보지 않게. 삼가 46명 장병의 명복을 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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