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68] 연지민의 "세상을 바꾼 사과"
세상을 바꾼 사과
연지민
세계적인 스타 사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삭아삭
자기 자랑이 한창이다
―얘들아, 내가 좀 오래됐지만 에덴 동산에서 자란 이브의 사과야
―난, 만유인력을 세상에 알린 뉴턴의 사과야. 과학 하면 나란 말이지
―뭐니 뭐니 해도 비싼 게 최고지. 난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폴 세잔의 사과야
모두 잘난 척 어깨를 으쓱대도
구석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는 사과 한 알
참다못한 뉴턴 사과가 얼굴 붉히며 물었다
―야, 거기 찌그러진 사과! 넌 도대체 누구야?
―미안해. 한 입 파먹힌 애플이야.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날 가장 좋아해. 봐봐, 모두 손에서 놓지 않잖아
—웹진 《비유》(2025년 3, 4월호)

[해설]
제4의 사과
어제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가서 폴 세잔+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전을 보았습니다. 안성평생교육원 시창작반의 박정희ㆍ신정옥ㆍ이상남ㆍ최애리 시인과 함께한 관람이었습니다. 송병순 님의 자녀 이수진 양의 결혼식이 있어서 오신 분들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겸해서 미술관에 갔던 것이지요. 예술의 전당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 수 있니?
연지민 시인은 유명한 3개의 사과를 의인화해 자기들이 얘기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는 유혹과 금기의 열매로 설정되어 있었지요. 이브가 선악과(사과)를 먹는 장면은 인류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과 악을 알게 된 순간을 상징합니다. 이로 인해 죄와 원죄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뉴턴의 사과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일화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왔습니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그 순간 사과뿐 아니라 달과 별까지 잡아당기는 지구의 힘을 상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곧게 떨어지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지구가 만물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이 달과 행성에도 작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훗날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발전했다는 거지요.
화가 세잔이 그린 사과 그림은 아주 비쌀 겁니다. 이유인즉 서양화를 지배해 온 전통적인 규칙을 깨고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잔은 자연을 단순히 시각적 감각으로 묘사하는 인상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 구, 원뿔로 해석해 사물을 기하학적 질서로 재구성했습니다. 사과 그림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음영 대신 색의 층위로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했습니다. 한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해 조화롭게 배열, 후대 입체파 화가들이 시각적 현실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기법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단순히 정물화 속의 사과가 아니란 거지요.
이 세 사과가 잘난 척 어깨를 으쓱대고 있는데 구석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는 사과 한 알이 있었답니다. 애플사의 그 유명한 사과 그림. 뉴턴의 사과가 은근히 화가 나서 “야, 거기 찌그러진 사과! 넌 도대체 누구야?” 하고 물었다지요. 그 사과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미안해. 한 입 파먹힌 애플이야.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날 가장 좋아해. 봐봐, 모두 손에서 놓지 않잖아” 아아 스티브 잡스. 스마트폰. 애플사의 로고. 지하철을 타보면 다들 제4의 사과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시집을 들고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인인데요. 연지민 동시인 님, 어떻게 하지요?
[연지민 동시인]
2000년 《한국문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동시 먹는 달팽이’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2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되었고, 그해 11월 25일에 동시집 『타잔이 나타났다』를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