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승하의 "새남터 망나니의 독백"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09>
새남터 망나니의 독백
이승하
한강 백사장이 오늘따라 더 하얘 눈부시네 모래 위에 꽂힌 깃대의 깃발들 제가끔 푸르르 떠는데 까마귀들 무엇을 먹겠다고 저렇게 몰려와서
저 젊은이 머리 이제 곧 백사장에 나뒹굴 것이다 나이 고작 스물여섯이란다 망나니 생활 삼십 년에 저런 홍안은 처음이네 저렇게 태연할 수가
군문효수軍門梟首…… 낭독하는 사형선고문에 나와 있었다
전례대로 두 귀에 화살을 꽂았소 피가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소 두 군졸이 양 겨드랑이 밑에 두 개의 몽둥이를 끼워 넣어 앞뒤에서 걸머맸다오
오늘 우린 저 총각을 염라대왕한테 보내야 한다 빨리 목을 베자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말야 장가도 못 갔다는군 애비와 작은할배는 효수형 증조할배는 옥사로 그만
서학괴수西學魁帥…… 포도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업이 망나니다 술도 고기도 칼을 휘둘러야 생기고 주막집에도 봉놋방에도 피 묻은 칼을 씻어야 갈 수 있단다 하늘 우러러 뭐가 부끄럽겠냐
그때 느닷없는 외침 소리 빙빙 돌다 정신 차려 보니 그만 도시오 어지럽소 어서 내 목을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으니 빨리 내 목을 자르시오
수선탁덕首先鐸德……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각자 한 번씩 내려치기 시작했소 젊은이라 그런지 목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소 한 칼 두 칼 세 칼…… 여덟 번째 칼을 맞자 비로소 나뒹구는 머리
형리가 머리를 주워들었소 목판에 얹어 포도대장 앞으로 가 검사를 받았소 다들 수고 많았다 물러가 목을 축이도록 하라 그날 밤엔 술을 못 마셨소
안드레아…… 교인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임금을 안 믿고 하늘나라의 임금을 믿는 것은 죽을죄인데 왜 그런 죄를 지었던 것일까 죄를 지었으면 용서해 달라 빌어야 하는데 곧 죽어도 꼿꼿하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의연한 표정과 그의 말 그만 도시오 어지럽소 빨리 내 목을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내 목을 자르시오
* 김대건(1821〜1846)
ㅡ『사람 사막』(더푸른, 2023)

[해설]
그대 마음이 아프면 이곳에 가보시라
살다 보면 즐거운 일, 흐뭇한 일보다는 힘든 일, 괴로운 일을 겪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은총이 넘치는 나날이라면, 기쁨이 충만한 나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가 나고, 남이 밉고, 짜증이 나고, 몸도 아프고……. 그런 시간으로 나날이 채워지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겠지요. 성사를 보고 기도하면서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금방 평상시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또다시 화를 벌컥 내고 마음속으로 남을 원망하고 험담도 합니다. 증오심까지 일어나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물론 본인도 상처를 받습니다.
아마도 그대는 그런 때 기도를 하겠지요. 주여, 이 우매한 자를 깨우쳐 주소서. 미사가 없는 날 조용한 성당만큼 기도하기 좋은 곳은 없습니다. 주여, 이 어리석은 자를 일깨워주는 한 말씀만 해주소서.
성경을 읽기도 할 것입니다. 잠언을 읽고, 욥기를 읽고, 사대 복음서 중 어떤 대목을 읽기도 하겠지요. 성경의 좋은 구절을 베껴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구한 경험도 해보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고 김대건 신부님과 관계가 있는 곳을 거닐면서 명상에 잠겨보는 것입니다. 명상? 너무 고상한 말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보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좀 참으면 됐는데 말이야. 그런 말을 왜 했던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광화문우체국 도로 쪽으로 화단이 있습니다. 옛날 우포도청이 있던 자리지요. 김대건 신부님이 백령도 인근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순교하기 직전까지 3개월간 투옥되어 국문(鞫問)을 거치면서 신앙을 증언한 장소입니다.
삼각지역과 효창공원역 사이에 있는 당고개는 참수를 당하러 새남터로 걸어가던 중에 잠시 쉬어 갔던 곳입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를 거쳐 새남터로 갔기에 세워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근처에 중림동 약현성당이 있습니다. 이 장소에 성당을 세운 것은 중국 북경에 들어가 서양인 신부로부터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의 집이 이곳과 인접한 곳에 있었고, 신유(辛酉, 1801년), 기해(己亥, 1839년), 병인(丙寅, 1866년) 천주교 수난 때에 44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가까운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순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용산역 근처에 있는 새남터 순교성지와 합정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에도 가보면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될 것입니다. 차가 있으면 용인의 은이성지에도 한번 가보십시오.
김대건 신부님이 지상에 머문 기간은 25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새남터에서 목을 베어 죽이는 효수를 당했을 때였습니다. 망나니들이 춤을 추면서 칼을 휘두르는데 차마 바로 목을 베지 못하자 “어서 치시오!” “빨리 내 목을 자르시오!” 하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칼질 여덟 번 만에 목이 떨어져 모래밭에 나뒹굴었다고 하지요.
그 넓은 중국 대륙을 도보로 남하해 마카오까지 공부하러 갔던 것, 두 프랑스 신부님을 작은 배에 모시고 상하이에서 국내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등 그분의 용기와 기개를 생각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이런저런 번민과 상처는 사소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걸어가신 길을 ‘치명 순교길’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함께 걷는다는 마음으로 이 땅 첫 사제의 마지막 순교길을 걸어가 봅시다. 저는 김대건 신부님의 전기를 웅진출판사에서 위인 동화로 낸 적이 있는데 자료 조사를 더욱 열심히 해 나남출판사에서 성인 평전으로 펴냈습니다. 책이 안 팔려 출판사에 미안해 가톨릭문인협회 전 회원에게 부쳐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화 <탄생>을 강추합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