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41】 정진희의 "상고대"
상고대
정진희
불 꺼진 육신을 닫아주는 일이란
오래된 그의 대궁 속 늑대를 깨워
덜 마른 울음소리를
지피도록 두는 것
마음은 먼 먼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칼을 세워 오는 밤 내가 울까 두려운 밤
서릿발 헛헛한 속에
고봉으로 얹히다가
육탈된 발자국 그 끝에 엉겨 붙어
눈꽃으로 서성이는 환청을 끌어안고
반음씩 올라가는 소리
부딪치는 흰 어금니
『봄밤의 연금술』 (2025. 목언예언)

있는 힘껏 밀어내고 푸름을 향해 내달리다 제 몫인, 폭죽 같은 불꽃들을 쏘아 올린 후 제 몸에 서리로 피워내는 꽃이 상고대다.
이 시는 겨울나무의 외부 형상을 빌려와 인간이 겪는 정서와 내면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 꺼진 육신을 닫아주는 일이란 / 오래된 그의 대궁 속 늑대를 깨워” 시의 첫 문장은 이미 전체 이미지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고요해진 모습이지만 그 고요 속에는 오래된 본능, 의지, 혼자만이 가야하는 길, 절대고독을 말한다.
겨울나무는 살아있지만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텅 빈 대궁 같은 육신은 겨울바람에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먼 먼 길을 잘 가고 있는지’ 화자의 자기 성찰, 방향성 상실, 정서적 유실감을 함축한다. 불안한 마음이 자신이 울까 두려운 밤에 서릿발 같은 차갑고 단단한 마음을 붙잡고 걸어가려 한다. 그러나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는 수북하게 쌓여간다.
“육탈된 발자국 그 끝에 엉겨 붙어 / 눈꽃으로 서성이는 환청을 끌어안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생생하고 원초적이다. 겨울나무처럼 완전히 벗겨진 존재, 껍데기 없는 자아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생명이 올라온다. 가장 차갑고 힘든 순간에 가장 뜨거운 나의 모습인 바닥의 소리가 올라온다.
“반음씩 올라가는 소리 / “부딪치는 흰 어금니” 시 전체를 응축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이는 상고대가 빛을 반사하며 드러낸 차갑고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화자의 새로운 의미 생성의 의지로도 읽힌다.
「상고대」는 극한의 차가움 속에 드러나는 생명성을 보여준다. 내면 갈등인 ‘늑대’ ‘서릿발’은 정서적 결정체를 이미지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적(靜的)인 외형과 동적(動的)인 내면을 치밀하게 설계했다. ‘불 꺼진 육신’, ‘울음’, ‘육탈된 발자국’, ‘환청’등 은유적 자아를 보여주며, 상고대라는 상징을 통해 정서적 층위를 형성하면서 내면적 성찰의 미학을 효과적으로 만들고 있다.
겨울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 내면의 울음을 듣게 되고, 그 울음은 다시 걷게 하는 힘이 된다. 투명한 상고대처럼 자아는 고통과 고요의 경계를 통과해야 본질이 드러난다. 차가움을 견딘 끝에 피어나는 상고대처럼, 우리들도 고요하고 차갑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