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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덕수궁, 그곳에는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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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인가. 그렇게 나는 다시 덕수궁에 갔다. 나의 청춘의 고향 같은 곳을.

한때 가을이면 홀린 듯 전시회를 찾아다니곤 했다. 기껏 가봐야 덕수궁과 경복궁에서 열리는 전시회였지만 내 주머니 사정이 가볍던 시절이라 그 일은 꽤 사치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책을 찾아서 종로에 있던 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고등학교 안에 있던 도서관을 수업이 끝나면 들러서 책을 빌려 읽곤 했다.

 

   전시관이 많지 않던 시절 미술, 서예 등의 전시회를 보려면 고궁으로 가야만 했다. 특히 예술의 계절  가을이 되면 가곡이며 피아노와 각종 연주회 등의 행사를 알리느라 내 걸린 현수막들을 보면 내 가슴은 두근거리곤 했다. 문화예술행사에 가려면 입장표가 필요한데 표를 살 수 없어서 내 마음은 천 번도 더 그곳을 들어갔다 나왔었다. 그 당시 문화에의 갈증을 책으로 달래고 무료전시회로 달래면서 나의 청춘은 흘러갔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유명 작가의 책 한 권이라도 사는 날은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이달의 베스트셀러가 궁금하여 종로 3가 책방을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나던 순간들은 내 청춘이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그렇게 인연이 많은 덕수궁은 중학교 3학년 때 소풍 장소이기도 했다. 창경궁은 부모님과 몇 번 가 봤지만 덕수궁은 그때가 첫 방문이었다. 시원하게 물을 뿌리던 분수대 앞에서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던 친구들. 함께 찍었던 사진도 앨범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때 그 친구들은 가고 없지만 그 순간 만은 사진 속에서 풋풋한 그대로 정지되어 있다. 그 후로 가을이면 몇 번 더 전시회에 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일하느라 바삐 보낸 시간들이 스치듯 지나간 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 나도 돌아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덕수궁에 갔다. 나의 청춘의 고향 같은 곳에.

     덕수궁은 고종의 궁궐’ ‘대한제국의 황궁이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30여 년을 훌쩍 넘어서 올해 봄에 찾아간 덕수궁은 막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대한문을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 개나리와 벚꽃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내 뺨을 차갑게 스치고 지나갔다.    

 

덕수궁 [이미지: 류우강 기자]

 

    입구에서 반기는 금천교를 지나 고종이 침전으로 사용한 함녕전의 정문, 광명문 앞에서 함녕전을 바라보며 사진기에 담았다. 이어서 중화문 속으로 보이는 중화전을 한 장의 사진으로 각도를 잡았다. 중화문 앞에서 내 모습도 카메라에 저장했다. 추억을 그릴 날을 위해서. 분수대 앞 등나무 아래 의자에 잠시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가고 찬바람만이 봄을 재촉하며 바쁘게 오고 갔다
 

   발길을 돌려 석조전  뒷길을 한 바퀴 돌았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말기에 건립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대한제국 최초이자 마지막 서양식 궁전이다. 전시회 현수막도 없이 쓸쓸히 서 있는 석조전과 미술관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모습은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다만 긴 세월 동안 비바람에 쓸리고 쌓인 세월의 흔적이 기둥 마디마디를 감싸고 있었다.


   분수대를 빙~둘러서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가 가지마다 매달린 붉은 꽃봉오리를 곧 터뜨릴 것만 같았다. 부처꽃과에 속하는 배롱나무는 빨간 꽃잎이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지는데, 여름 내내 몇 달을 장마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100일 동안 오래 피어 있어서 백일홍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면 사람들은 꽃 앞에서, 삶이 꽃필 날을 기다리며 카메라에 쉼 없이 담을 것이다. 발길을 옮기며 꽃이 활짝 필 때 다시 오마하고 배롱나무에게 약속했다. 석조전 앞의 배롱나무를 지나니 중화전 뒤 돌기단 위에 쌓아 올려진 즉조당이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덕수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키가 크고 우람한 살구나무 앞에 섰다. 살구나무는 궁에서 보기 드문 2층 목조건물인 석어당 앞에서 그 늠름한 기운을 위로 쭉 뻗어 올린 채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보통 3월 말에 피는 살구꽃은 아직은 쌀쌀한 바람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둥근 기둥을 어루만지며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가지 끝을 올려다보았다. 굵은 밧줄을 감고 있는 듯한 살구나무 기둥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오랜 시간 삶을 견뎌온 살구나무는 그 굵은 몸통을 비비 틀며 하늘로 뻗어 올라가 가지마다 잎을 달고 넓게 그늘을 드리웠다

 

   살구나무는 그 오랜 세월 무슨 말 못 할 모진 풍파를 견디느라 몸통이 비비 꼬이며 자랐을까? 그렇게 뒤틀리며 올라가야만 했던 나무 기둥은 또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살구나무는 그 모든 걸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위로 쭉쭉 뻗어 나가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억누르는 어떤 힘에 의해 눌리고 눌리면서도 살고자 몸부림쳤을 나무가 애처로워 보여서 떨리는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힘들었구나, 견디느라 힘들었구나.’

 

    대한문을 나서는 두 갈래 길에서 낮게 엎드린 소나무 길로 들어섰다. 허리를 숙이고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가 안쓰러우면서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소나무가 믿음직스러웠다.

 

   내리쬐던 해는 흐린 하늘에 가리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빠져나가니 나뭇잎들이 크게 술렁인다. 내 머리카락도 바람 부는 대로 마구 헝클어진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발걸음을 재촉해 덕수궁 대한문을 나선다. 나의 청춘의 고향 같은 곳을.

   

   정각 6.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잘 가고 또 보자는 말처럼 들린다

 

뚜벅뚜벅 걷기 좋은 덕수궁 근처 가볼 만한 곳, 다 소개합니다! | 서울시 - 내 손안에 서울
덕수궁 석조전 

 

[작가의 생각]

 

    덕수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서양식 건축물(석조전, 정관헌, 돈덕전 등)이 많으며 광해군 때 정식 궁궐로 승격되어 경운궁이 되었고,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덕수궁(德壽宮)'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격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특별한 전시관이 없던 시절 덕수궁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전시회가 많이 열렸고,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의 고미술과 유물 중심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음악회나 연극 및 공연은 주로 국립극장에서 개최하였고, 연극 전용 소극장으로는  덕수궁 옆의 세실극장과 대학로에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습니다. 요즘은 각 지역마다 큰 미술관과 아트센터를 지어 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문화예술활동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창조적인 활동입니다. 책 한 권을 읽고 감동 받는 것처럼 연극이며 영화,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접하고 보고 느끼며 삶에 적용해보기도 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게 됩니다. 최근의 영화 '케데헌'이 사회에 전하는 메세지로 우리는 한참을 기쁨으로 들떴습니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어쩔 수가 없다'가 골든글로브 수상 후보에 포함되었다고 하니 더없이 반가운 소식입니다. 영화 한 편에 국민과 세계 여러 나라가 열광했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인형극 관람과 각종 전시회나 동물원과 놀이동산 및 박물관 방문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삶이 안정되고 정서적인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문화예술활동을 계속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예술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공원을 걷거나 저렴한 공연을 볼 수도 있고 지역 단체에서 주최하는 무료공연을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지역 단체에서 봉사를 하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이 있으니까요

 

   경복궁과 덕수궁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고궁 나들이는 저를 가슴 뛰게 할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 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며 삶의 만족과 행복을 느낄 것인지도 자신의 결정이 만들어 갑니다. 나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만족한 삶을 사는 내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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