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50] 김강호의 “모란”
모란
김강호
깊은 봄 뒤란에서
삼삼오오 피는 입술
저것은 꽃이 아닌
간절한 기도였다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른
통성기도 한 무더기

「모란」을 쓸 때, 나는 꽃을 바라보며 꽃을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한순간에 뜨겁게 타오르는 장면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나는 그 숨은 열기를 언어로 옮기기 위해 꽃을 사람의 몸과 목소리로 바꾸어 보았다. 그래서 첫 구절의 모란은 단순한 꽃송이가 아니라 “삼삼오오 피는 입술”이 된다. 꽃잎이 겹겹이 벌어지는 모습은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꺼내려는 순간의 입술과 닮아 있다.
‘뒤란’이라는 공간 역시 의도적으로 선택한 자리다. 뒤란은 화려한 정원의 중심이 아니라 집의 가장 뒤쪽,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지 않는 곳이다. 인간의 마음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장 깊은 곳, 말하지 못한 기도와 소망이 모여 있는 자리다. 모란이 그곳에서 피어 있다는 것은 곧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이 봄이라는 계절을 만나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꽃잎은 입술이 되고, 입술은 다시 마음의 언어가 된다. 이때 모란은 더 이상 식물이 아니라, 간절함을 품은 존재가 된다.
중장의 “저것은 꽃이 아닌 / 간절한 기도였다”라는 고백은 이 시의 중심을 이루는 문장이다. 나는 어느 순간 모란을 바라보다가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장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붉게 벌어진 꽃잎들은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을 향해 열리는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기도는 소리 이전의 마음이며, 말보다 먼저 타오르는 간절함이다. 모란의 꽃잎들이 겹겹이 열리는 장면은 바로 그 마음의 층위에 닿아있다. 그래서 이 시에서 꽃은 곧 기도이며, 기도는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 자연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상징으로 겹쳐지는 순간이다.
종장으로 갈수록 색채를 짙게 했다.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른 / 통성기도 한 무더기”라는 표현에서 모란은 마치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기도하는 집단적 열기다. 통성기도는 조용한 속삭임이 아니라 뜨겁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의 합창이며 간절함이다. 꽃잎들이 겹쳐지고 포개지며 점점 더 짙어지는 붉은빛은 마치 수많은 마음이 한 방향으로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그래서 모란은 하나의 꽃이 아니라, 간절함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기도의 형상이 된다.
결국 「모란」은 꽃을 노래한 시라기보다 마음의 기도를 꽃으로 번역한 시에 가깝다. 뒤란에서 삼삼오오 피어나는 붉은 입술들은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한 소망과 간절함의 형상이다. 봄은 그 마음을 깨우는 계절이며, 모란은 그 마음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순간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 꽃들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붉게 달아오르는 기도의 무더기로 남기고 싶었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