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원 초대전, 별이 사라진 밤바다에서 ‘잊혀진 자연’을 묻다
도시의 불빛이 밤을 환하게 밝힐수록, 사람들의 시선에서 별은 점차 멀어진다. 박채원 작가는 별이 사라진 밤하늘과 고요한 바다,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배와 물결의 빛을 통해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는 자연과 내면의 감각을 환기한다.
박채원 작가의 초대전이 2026년 7월 22일부터 8월 18일까지 전주 백희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해서 전개해 온 ‘잊혀지다’ 연작을 중심으로, 짙은 밤의 풍경 속에 남겨진 빛과 기억의 의미를 조명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깊은 검정과 남색으로 가라앉은 화면이 관람객을 맞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에는 파란색과 금빛, 흰색의 짧은 선들이 겹겹이 놓여 있다. 수면을 따라 번지는 빛은 실제 풍경을 재현하면서도, 기억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잔상처럼 보인다.



작품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오징어배와 어선은 단순한 풍경의 일부에 머물지 않는다. 커다란 달빛을 등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은 어둠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존재이자, 사라진 별을 대신해 밤을 밝히는 인공의 빛을 상징한다. 여러 척의 배가 수평선을 따라 늘어선 작품에서는 각각의 달빛과 반영이 이어지며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밤의 리듬을 형성한다.
도시 풍경을 담은 작품에서도 박채원의 문제의식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건물과 창문의 불빛은 거대한 도시의 생명력을 보여주지만, 그 위로 펼쳐진 하늘에는 별이 없다. 도시와 숲이 맞닿은 풍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환경과 자연 사이의 긴장, 그리고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박채원은 도시를 그리던 중 어린 시절부터 매년 찾았던 울진의 밤바다를 다시 바라보며 작업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별이 사라진 밤을 그린 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밤바다를 보게 됐으며, 어둡기만 한 하늘에서 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지만 별은 이미 숨어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작가에게 별이 사라진 밤하늘은 현대인의 변화된 삶을 상징한다. 과거의 별은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고 사람을 위로하는 존재였지만, 기술의 발달과 도시의 인공조명 속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현대인은 밤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보다 아래를 향한 채 살아가며 별과 자연,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시선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작품의 제작 과정에도 반영된다. 박채원은 먼저 연한색을 반복해서 여러 차례 겹쳐 칠하며 깊고 어두운 밤하늘을 만든다. 작품마다 채색 횟수는 다르지만, ‘별이 사라진 밤’이라는 의미는 동일하다. 이후 바위와 바다, 오징어배와 마을의 불빛을 더하면서 현실의 풍경과 기억 속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만난다. 연작의 제목인 ‘잊혀지다’에는 하늘의 별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지에 혼합매체와 채색으로 제작한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정사각형 화면에 도시와 숲을 압축한 대작부터, 달을 배경으로 한 척의 배를 담은 작품,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는 어선의 행렬, 바위섬과 노을을 표현한 소품까지 구성과 시점도 다채롭다.


특히 검은 화면의 넓은 여백은 박채원 작품의 중요한 조형 요소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밤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는 장소가 된다. 그 아래 놓인 수평선과 작은 빛들은 침묵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화려한 표현보다 절제된 선과 제한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평소 지나쳤던 밤의 감각을 천천히 되돌려놓는다.
푸른 물결과 금빛 반영 역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짧게 끊어진 수평선들은 파도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시에 시간의 조각처럼 보인다. 물 위에 비친 빛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흔들리고 흩어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기억과 자연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잊혀진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메시지다.
박채원은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이 지닌 소중함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공적인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시간이 필요하며, 밝은 인공조명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라진 별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경기대학교 한국화과를 졸업한 박채원은 2020년 갤러리d960에서 개인전 《빛나는 밤》을 열었으며, 이번 백희갤러리 초대전은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그동안 예술의전당 청년미술상점 아트페어, 베이징 AFIG2026, ASYAAF, 화랑미술제 in 수원, One Art Taipei, 뱅크아트페어, 코리아아트쇼 등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해 왔다.
박채원의 밤은 단순히 어둡지 않다. 별이 사라진 자리에 배의 불빛과 마을의 불빛, 달빛과 물결이 남아 서로를 비춘다. 이번 전시는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고, 우리가 잊어버린 자연과 기억,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자리다.

전시 개요
전시명: 백희갤러리 박채원 초대전
작가: 박채원
전시 기간: 2026년 7월 22일~8월 18일
전시 장소: 백희갤러리·BECKY ART SPACE, 전주
주요 작품: ‘잊혀지다’ 연작
작품 재료: 장지에 채색 및 혼합매체
관람 문의: 백희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