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전윤호의 "딸'
딸
전윤호
세상에 힘든 일이 딸년 하나 키우기
품 안에선 철부지더니 금방 사라져버렸네
정선으로 시집가야 평생 쌀 서 말 먹는데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정을 주지 말게
장날이면 읍내 가자고 그리 졸라대더니
저녁 해가 다 지는데 돌아올 줄 모르네
애지중지 키워봤자 남 줄걸
걱정으로 지샌 밤에 귀밑머리 허옇네
ㅡ『사랑의 환율』(달아실, 2025)

[해설]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마음
정선이 낳은 최고의 시인인 전윤호 시인이 정선아리랑 가락에 맞춰 여러 곡의 노래를 부른다. 지난달 25일에 나온 시집 『사랑의 환율』에는 이 시처럼 각 연이 2행씩이고 총 4개 연으로 된 시가 여러 편 나온다. 정선아라리(정선아리랑의 원래 이름)는 수백 년을 두고 무명의 기층민중이 창작하여 편수가 늘어났으므로 전윤호 시인이 민요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한 이들 시도 정선아라리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민요의 가락을 차용한 시는 「서시」「고향」「귀양살이」「딱 천 년」「딸」「떼꾼」「마음 한 그루」「망명」「물봉선」「백정」 「버들이 우는 밤」「사라진 여인」「산돼지 사냥」「여량」「이웃」「주인」 등 10편이 넘는다. 이들 작품 중에서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시는 「딸」이다. 딸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시의 내용에 십분 동의할 것이다.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던 것이 어느새 커서 자기 세계로 가버렸다. 딸이 정선으로 시집을 간다면 평생 쌀 서 말밖에 먹을 수 없으니 세상의 모든 딸이여, 사내가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정을 주면 안 된다.
딸을 평생 데리고 살 수는 없다. (지금은 딸들이 절반은 시집을 가지 않지만.) 장성하면 시집을 가게 마련이다. 남편을 잘 만나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근심을 주는 경우가 많다. 걱정하는 동안 세월은 가고, “걱정으로 지샌 밤에 귀밑머리”가 허옇게 되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인데 시인은 걱정하다 세월을 다 보내버렸다.
음악을 좋아하고 소질이 좀 있다고 초등학생 딸을 예술의전당에 수십 번 데리고 갔다. 한밤중에 올 때 버스에서 내려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럼 업고서 집까지 오곤 했다. 대학생이 된 딸은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술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귀가했을 때 나는 자고 있어 눈치를 채지 못했다. 친구랑 미친 사람 널 뛰듯 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질 않나, 돈 안 되는 음반도 3장을 냈다. 5년 만에 한국에 와선 장애인들과 함께 노래 만드는 일을 몇 년째 하고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가서,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이 있는 부산에 가서 노래를 수시로 불렀다. 전윤호 형! 말도 마슈. 내 머리가 이젠 다 빠지고 희끗희끗해졌다오. 딸이 아니라 웬수지 웬수.
[전윤호 시인]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선』『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순수의 시대』『연애소설』『늦은 인사』『봄날의 서재』『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등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