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 이〇〇의 "지폐 몇 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14 ]
지폐 몇 장
이〇〇
나는 돈이 되고 싶다
높은 어르신네 지갑 속 빳빳한 그런 돈은 말고
새벽 네 시 청소부 아저씨의 윗주머니에 든
구겨진 천원짜리 다섯 장
나는 돈이 되고 싶다
새벽 한 시 응급실 앞에 서서
동동걸음으로 울고 있는 젊은 아낙네
그 손에 꼭 쥐어진 만원짜리 두 장
나는 돈이 되고 싶다
노동자의 풀려진 안전화끈 그 뒷주머니에 든
몇 장의 지폐이고 싶다 저녁으로 국밥 한 그릇
반주로 막걸리 한 병
그러고도 남은 땀에 녹녹해진 지폐 몇 장
나는 그런 돈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전부에서 몇 장 모자라는
구겨지고 땀냄새 나는 지폐 몇 장이고 싶다
―『새길』(2014년 가을호)에서

[해설]
교도소 수용자가 쓴 시
법무부 사회복귀과에서 오래 발행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서울지방교정청 사회복귀과에서 발행하고 있는 문예지가 있다. 수용자들이 쓴 작품을 엮어서 내는 문예지 『새길』이 2025년 봄호로 통권 469호를 내게 되었다. 미군정 시기인 1948년 4월 1일에 창간된, 역사가 오랜 문예지인데 비매품이고 교도소 내에서만 읽힌다. 2012년 가을호부터 심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심사하는 분야는 ‘테마 원고’와 ‘용서의 글’로 일종의 수필이다. 각자 그 호에 주어진 테마를 갖고 쓰거나 사과문을 쓰니 구구절절 절실하고 진정성이 있다. 각각 100편 정도씩 투고되는데 20편씩 추려내어 작품평을 쓴다.
시는 신정민 시인이 뽑는데 내 마음을 촉촉이 적신 시가 있기에 소개를 한다. 내가 돈이 되어 누구의 손에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적어 시를 썼는데 이 시의 화자는 마음이 무척 착하고 여리다. 교도소에 갇혀 형을 사는 이가 쓴 시 같지 않다. 내가 돈이라면 청소부 아저씨의 윗주머니에, 응급실 앞에서 발을 구르는 젊은 아낙네의 손에, 노동자의 뒷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싶다고 한다. 이런 건전한(?) 생각을 하는 이가 옥살이를 하고 있으니 어떤 죄를 지었으니 몇 년 형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2009년부터 2019년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전국의 여러 곳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 가서 시 치료 프로그램 강사를 했다. 교도나 교위분께서는 수용자와 사담을 하는 것은 좋지만 죄목을 묻거나 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묻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여기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돈 때문이고 절반은 치정이나 사련(邪戀) 같은 남녀 관계 때문이라고 한 말도 잊히지 않는다. 이 시를 쓴 이는 아마도 돈 때문에 형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반성의 의미로 쓴 시가 아닌가 여겨진다. 글이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실낱같이 남아 있는 양심, 측은지심, 자비심,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을 끄집어내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글의 힘이 대단하다. 심사위원 신정민 시인은 작품평을 이렇게 쓰셨다.
“돈이나 재물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것이며 가장 위험한 재화라 생각됩니다. 잘 쓰면 유용한 것이나 잘못 쓰면 독이 되는 것.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돈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드러나 있어 제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시인의 약력]
전혀 알 수 없음. 『새길』에는 쓴 사람의 이름은 나와 있지만 어느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음. 원고료가 소액 지급된다는데 아마도 각자 난생 처음 받아보는 원고료일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