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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카메라로 증언하는 자유와 기억…탈북 영화감독 허영철의 ‘안보·북한인권 콘텐츠’

KAN 편집국 기자
입력
9월 3일 국회서 다큐멘터리 『43호의 운명』 특별시사회

| 국군포로에서 강제북송 탈북민까지…영상으로 기록하는 ‘잊힌 사람들’
|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마산』도 9월 21일 촬영 마무리 예정

북한인권 실태를 알리는 탈북 영화감독 허영철

[김진용 칼럼니스트 | 액터스뷰] 오는 2026년 9월 3일 오후 1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허영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43호의 운명』 특별시사회가 열린다. 국회의원 한기호 의원이 주최하고 국군포로가족회와 (사)국군포로가족정착지원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영화 시사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53년 7월 전쟁은 멈췄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3호의 운명』은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들의 삶과 그 가족들이 견뎌야 했던 긴 세월을 기록하고,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내는 작품이다.

 

허영철 감독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한 뒤 2002년부터 대한민국에 정착해 영상 분야에 뛰어들었다. 전문적인 영상교육을 받고 방송과 영화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초기 작품인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뿌리』로 2005년 부산시네마영화제 창작상을 받았다. 이후 국군포로의 삶을 다룬 『파편』 등 분단과 전쟁, 탈북민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왔고, 2019년에는 탈북민 출신 감독으로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100인 감독’ 영화제에 이름을 올렸다.

국군포로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43호의 운명>

특히 국군포로 문제는 허 감독이 오랫동안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영역이다. 과거 언론에 공개된 그의 활동에서도 전쟁기념관 등에서 국군포로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해 온 사실이 확인된다. 이번 『43호의 운명』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군포로 문제를 숫자나 외교 현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 인간이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세월과 그 후손이 짊어져야 했던 삶으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영상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허영철 감독의 카메라가 갖는 또 하나의 힘은 당사자의 경험을 기록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는 1997년 탈북한 뒤 중국에서 강제북송돼 북한에서 1년 4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다시 탈출해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때문에 그의 북한인권 콘텐츠는 멀리서 북한을 관찰하는 제작자의 시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경험한 공포와 생존의 기억을 영상언어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무게를 갖는다.

영등포의 작업실에서 현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허영철 감독

그 대표작이 북한인권 영화 『도토리』다. 중국에 억류된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제작된 이 작품에는 100명 안팎의 탈북민들이 제작과 출연에 참여했다. 실제 북송 경험자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토대로 북한의 감옥과 조사 과정, 탈출과 북송의 공포를 재현했다. 허 감독은 작품을 위해 북한 감옥을 실제 경험에 가깝게 재현했고, KBS 역시 제작 당시 이 현장을 취재했다.

 

『도토리』가 주목받은 것은 국내에서만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DC와 뉴저지 등에서 상영됐으며, 2024년 5월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한인사회와 참전용사, 북한인권 관계자 등 약 120명이 참석했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에서 확장판 상영회가 개최됐다. 허 감독은 당시 북한에 억류됐다가 송환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비롯해 북한에 억류됐던 외국인들의 사건을 소재로 차기 작품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의 반향도 상당했다. 허 감독은 미국 여러 도시에서 『도토리』를 상영하는 과정에서 인권상과 미국 정치권·지역사회 등의 상을 포함해 56개의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 역시 『도토리』의 해외 상영과 이러한 수상 사실을 보도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상의 숫자 자체가 아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탈북민들이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증언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해외 관객에게 전달됐다는 점이다.

전쟁 당시의 자료들로 영상작업중인 허 감독

그런 의미에서 허영철 감독이 만드는 영화는 흔히 말하는 ‘안보 콘텐츠’와 조금 다르다. 안보를 군사력과 무기의 문제로만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와 생명, 기억의 문제로 확장한다. 북한인권 역시 추상적인 정치적 구호보다 한 사람이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다가 붙잡히고, 감옥에 갇히고, 가족과 헤어지는 구체적인 삶으로 보여준다. 실제 경험자가 카메라 뒤에 서고 또 다른 실제 경험자가 카메라 앞에 선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에서 독특한 증언성을 갖는다.

 

이번 『43호의 운명』 특별시사회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국가를 위해 싸웠지만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일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후대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묻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한 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잊혀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다시 사회에 불러낼 수는 있다. 그것이 기록영상의 힘이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특별시사회 초청장

허 감독의 카메라는 이제 북한과 6·25전쟁을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또 다른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영화 『마산』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을 배경으로, 격동의 시대 속 시민들과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복원하려는 작품이다. 특히 당시 해병대가 시민을 보호했던 역사적 장면과 증언을 작품에 담는다는 것이 제작진의 취지다. 영화 『마산』은 현재 촬영 막바지 단계로, 오는 9월 21일 촬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 부분은 향후 완성본 공개와 함께 관련 사료와 증언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됐는지 주목해 볼 대목이다.

 

필자는 안보 콘텐츠가 이념을 강화하는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안보 콘텐츠는 전쟁이 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 자유를 잃으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국가가 국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군포로의 삶을 기록하는 『43호의 운명』, 강제북송 탈북민의 고통을 담은 『도토리』,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의 한 장면을 되짚는 『마산』은 서로 다른 시대를 다루면서도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것인가.”

 

특히 9월 3일 국회에서 열리는 『43호의 운명』 특별시사회가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국군포로와 가족들의 삶을 다시 국민적 기억 속으로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73년이라는 시간은 한 개인에게는 평생보다 긴 세월이다. 그 긴 기다림을 견뎌온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지속적인 기억이며, 역사적 사실을 다음 세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카메라는 총보다 조용하지만 때로는 한 시대의 진실을 훨씬 오래 남긴다.

필자의 고대유물 해설 영상을 촬영한 허 감독(2022)
필자의 고대유물 해설 영상을 촬영한 허 감독(2022)

허영철 감독과 필자의 인연 역시 카메라와 역사 기록에서 시작됐다. 필자가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허 감독은 연구원이 소장·연구하던 고대 옥기 유물들을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하며 문화유산의 기록 작업에 함께했다. 이후 서울특별시교육청 ‘찾아가는 박물관’ 고대유물 전시 현장에도 찾아와 취재하며, 교실과 교육현장에서 우리 고대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북한인권과 안보, 국군포로, 고대문화유산은 얼핏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그러나 허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잊히기 전에 증언하며, 다음 세대가 기억하도록 남기는 일이다. 오랜 시간 그의 카메라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43호의 운명』이 또 하나의 소중한 역사 기록으로 남기를 응원한다.

허 감독의 김포 스튜디오에서 유물 촬영(2022)
허 감독의 유튜브 화면(2022)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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